뉴스게릴라는 살아있다
뉴스게릴라는 살아있다
  • 박현일
  • 승인 2004.04.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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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울음 소리가 새벽을 깨운다.이 여명에 조간신문을 보다가 정암 조광조를 떠오린다. 조선조 대표적 개혁 사상가인 정암을 두고 당시 사람들은 ``광자``-``화자``라 칭했다. 즉, ``미친사람``-``화를 낳는 사람``이란 뜻이다. 원칙에 철저하고 앎과 행함을 일치시키려 했던 정암선생이 이처럼 ``왕따``였다는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jq(잔머리지수?)가 높은 사람이 사회적으로 득세하고,요령과 술수에 밝은 사람이 일시적으로 ``판``을 먼저치는 세상이었음을 알 수있다. 500여년전 새로운 정치세력 ``사림``은 집권세력인 ``훈구,훈척,의 비리와 부도덕성을 비판하고``송곳``하나 꽂을 땅이 없이,추위와 굶주림에 신음해야 했던 당시, ``성리학적 이념``으로 시대상황을 돌파하려 했다. 왕도정치를 추구했던 것이다. 그 맥은 양평의 화서 이항로 선생으로 이어져 오늘날 양평인의 가슴속에도 꿈틀거리고 있다 조광조를 중심으로한 사림들은 연산군때 사화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엇지만 시련에 굴하지 않고 1515년 중종임금의 부름을 받아 요즘의 언론기관인 사헌부,사간원, 홍문관의 요직에 등용,본격적인 개혁의 기치를 들었다. 그러나 조광조는 훈구파의 끈질진 저항으로 그의 이상인``왕도정치``를 실현치 못하고 38세의 짧은 인생을 ``사약``으로 마감하고 만다. 오늘 이를 음미하는 것은 혼란기,장지연선생의``시일야 방성대곡``같은 ``촌철살인.의 뉴스게릴라 정신(시민기자정신)들이 아직 도처에 살아 숨쉬고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정몽주,길재,이색의 ``절의정신``은 세월이 흐르면서 현실과 야합하지 않는,민중과 지식인이 가야 할 참비판정신으로 승화되어 조광조,매천 황현선생으로 이어진다. 이 아침에 서재필.장지연,함석헌,장준하,천관우선생등 참 민족언론인의 마음가짐을 다시한번 겸허히 되새긴다. 백운신문,디지털 양평일보 ; http://yp.news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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