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간 나무심기에 미쳐 살았죠”
“40여년간 나무심기에 미쳐 살았죠”
  • 편집부
  • 승인 2007.03.27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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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대부산 나무전도사 이규헌 옹

 

“비가 무던히도 오던 날이었습니다. 폭우로 부러진 나무들이 없나 보려고 손전등도 없이 4㎞를 걸어 올라갔죠. 계곡을 건너는데 그만 급류에 휩쓸리고 말았 습니다. 한참을 떠내려가면서 이대로 죽는구나 했죠. 그런데 나뭇가지를 잡아 살 수 있었습니다. 제가 기르던 나무가 거꾸로 저를 살린 거지요.”

일생을 바쳐가며 나무 48만여 그루를 심어 가꾼 공로로 철탑산업훈장을 수상한 이 규현 씨(73).


이씨가 나무를 심은 면적은 160㏊(4만8000평). 160㏊는 아파트 2000가구를 지어 분양할 수 있는 엄청난 면적이다.  가로수(5m간격)로 따지면 서울에서 부산을 왕복 2번이나 왔다갔다 하고 한번 더 늘어 놓을 수 있을 정도다.


“처음 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이 65년이니 이제 햇수로 40년이 됐습니다. 그 동 안 나무에서 떨어져 죽을 뻔한 적도 있었고 정말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 도 이 나무들을 보세요.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릅니다.”


이씨가 나무를 심게 된 계기는 목재상을 하던 아버지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산 을 훼손할 수밖에 없는 아버지를 보고 자라면서 자신만은 산을 푸르게 가꾸는 게 꿈이었다고.


그 후 이씨는 30세가 되던 65년부터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혼자 나무를 심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업 보를 제 대에 끊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묵묵히 시련을 이겨낼 수 있었죠.”


그러던 76년 이씨에게 반가운 소식이 날아 들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산을 분양해 자비로 나무를 심는 사람들에 게 소유권 90%를 보장하는 이른바 '분수' 계약을 실시한 것이다.


그 후 원래 병무청 공무원이었던 이씨 삶은 나무에 저당잡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88년 29년 동안 정들었던 공무원(병무청) 생활을 끝내면서는 아예 거처를 양평 대부산으로 옮겼다.


“요즘도 일주일에 닷새는 산에 움막을 짓고 24시간을 나무와 벗하며 지내고 이틀은 집에 와서 쉬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누구는 미쳤다고도 하지만 나무가 좋은 것을 어떡합니까.”


이씨 얼굴에는 곳곳에 붉고 까만 흉터로 가득차 있다. 7년 전부터 생긴 이 상 처들은 나무에 비료를 주다 비료독으로 얻은 '백랍병' 때문이다.


40년 동안 이씨가 심은 묘목 값은 줄잡아 4억여 원. 정부 융자 외에도 부모형 제는 물론 자신이 아는 모든 사람에게서 돈을 끌어모았다.


이씨는 이같은 공로로 1976년 수범공무원 옥조근정훈장, 79년 조립왕, 86년 모범 독립가로 인정받았다.

이씨는 평범해 보이는 대부산 일대가 10년후 손꼽히는 아름다운 숲이 되리라 확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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