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년 양평 상고사,함왕혈(咸王穴)역사성 고증 및 용문산(함왕봉)지명 연계성 고찰 !
2천년 양평 상고사,함왕혈(咸王穴)역사성 고증 및 용문산(함왕봉)지명 연계성 고찰 !
  • 양평백운신문
  • 승인 2024.02.26 11:06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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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군 향토유적 지정 절차 이행 시급,향토사학계 공감대 형성
함왕혈 근경

 

1. 옛지명으로본 함왕혈 역사적 증언
 
함왕혈과 관련 양평문화원 부원장과 양평의병기념사업회 회장까지 지냈던 이철우
옹(84,양평군 양평읍) 증언에 따르면 “용문산으로 용이 드나드는 옥천면 용천리 사탄천
상부 사나사 계곡에 위치한 '함왕혈'은 예로부터 '함왕봉'과 '함왕골' 일대 사나사와 '함씨각',
'함왕산성' 등 함씨 대왕의 왕국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파다 했다. '천년고찰'사나사 식수원인 '용의 샘'인 용천리 깊은 계곡에
위치한 함왕혈은 대체 어떤 사연이 있는 곳일까? 함왕은 과연 누구이고 그분이 태어났다는
'함왕혈'은 주민들 사이에서 신성시되며 기도터와 국태민안을 빌고 각 가정의 평안을 빌던 치성을 들였던 매우 특별한 장소로 의미를 강조했다. 샘물처럼 맑은 물이 샘솟아 식수로도 사용했으며,
양평군민들의 '성혈' 및 '성지'로 받들어지던 곳”이라고 소개했다.

또 “이곳에서 '함왕'이라고 일컬어지던 '주악'이 탄생해

번창일로를 걷다 외부 침입으로 망하게 되자 함왕성 내성과 외성 밖에 함왕혈을 두고
성을 축조해 나라가 망했다는 역사성을 내포한 설화가 구전돼 양평사람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라고 전했다. 또 “함씨 시조 함혁왕(咸爀王)과 박혁거세(朴赫居世,박불구내)의 '붉은 혁, 빛날 혁'과 일맥상통하는
의미로 지역 향토사학자 고 정동식 선생은 생전에 '혁'자는 2천년전 한반도 토착 우리말로 ‘불’로 발음했을 것으로
보이며, 함씨 대왕의 ‘붉은 빛’을 추앙하고 존경하는 칭호였음을 생각할 수 있다"고
상기했다.
용문산과 함왕봉 원경
용문산과 함왕봉 원경

 

2. 밝은 빛고을 양평 용문산과 함왕혈 상호 연계성
 
향토사학자 박정수씨(63,양평군 양평읍)도 "양평지역 성읍국가 또는 고을 명칭이 삼한시대 '일화국'의 '일'도 밝은 해를 상징하며, 고구려때 지명 '항양'이나 신라때 '빈양'에서 '양' 은 모두 '볕양'자로 햇빛이 잘 드는 동네, 즉 함혁왕의 빛날'혁'과 날'일', 볕'양'은 일맥 상통하는 일관된 흐름이 있다" 고 강조했다.
 
그는 또 “용문산은 과거 미지산(彌智山)이라고 불렸으나 조선 태조 이성계가 등극하면서
‘용이 드나드는 문’이란 뜻의 용문산으로 바꿔 부르게 됐다는 유래가 있으며 순우리말로
용은 ‘미르’ 아기 용은 ‘미리’라 불렀으나 한자어로 표기할 땐 ‘미지’라 표기해 오늘날까지
양평군 내 곳곳에 ‘미지’란 명칭이 남아있다”라고 말했다. 이는 모두 함씨 왕이 탄생한
'함왕혈'이 있는 '용천리'와 역사적 연관이 있다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실제 조선조 ‘해동지도’에는 지평현 서쪽에 있는 미지산과 용문사가 묘사돼 있으며 ‘조선지지자료’에는 용문산이 고읍면(현 옥천면)과 인근 면에 걸쳐 위치한 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함혁왕이 함왕성을 축조하고 용천리 맑은 계곡 함왕혈이 탄생설화가 형성될
즈음 미르산(미지산, 용문산)으로 용이 승천한 본류 계곡이 곧 “용천”이라는 주민들의
증언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약 2천년전 삼한시대 양평에 함혁왕과 그 후손들이 성읍국가를 이뤘을 ‘용천리’를 중심으로 양서면
양수리에 용이 탄생했다는 ‘용늪’이 현재까지 있으며, 옥천면 아신리에 ‘용의 배’를 뜻하는
‘용배미’ 마을과 용이 승천한 문인 ‘용문사’, 그리고 청운면에 용의 머리인 “용두리”가
현존하고 있다.
백두대간 한강기맥 용문산 일원 전체로 양평군 일원이 ‘한마리 용의 형상’으로 돼 있으며 그
중심이 배꼽점에 함혁왕 탄생설화의 핵심 유적인 “함왕혈”이 있어 그 의미를 배가하고 있다.
 
양평문화원에서는 조선 태종 이방원이 세 번이나 참례한 ‘조선왕조실록’ 기록이 있는
함왕봉과 이웃한 백운봉 수월암 터 인근에 용문산령 제단을 설치하고 해마다 용의 신,
용문산령(백운봉령)께 제를 올리고 있다. 조선의 왕들은 용문산 성황이 용진(현재 양수리) 일대 남북
한강 용왕신(도당신)까지 관장한다고 보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남,북 한강 치수가 잘
돼야 도성이 있던 서울(한양)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서울은 기원전 18년 한성 백제가 도읍을 정한 후 고려시대 남경과 조선과
대한민국 수도 등 2천년간 명실공히 한반도 제1도시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풍납토성 발굴로 인해 한성백제와 관련된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와 서종면 문호리 적석총
유적이 연관유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또 양서면 대심리 철기유적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양평의 옛지도( 양근, 지평)
양평의 옛지도( 양근, 지평)

3. 양평 함왕혈(楊平 咸王)역사적 지표조사 실시 문화재 보전가치 및 필요성 인정

 
경기도는 1998년부터 문화재 분포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지표조사를 실시했다.
1998년 이전 또는 그 이후에 경기도와 양평군이 지표조사를 실시한 바 없으므로 현재까지 유일한 기록이다.
특히 경기도 문화재 분포 현장 파악을 위한 지표조사는 문화재청이 1997년도 간행한 ‘문화유적 총람’이 유일한 것으로 25년 전인
당시에도 함왕혈의 대한 문화재로서 가지와 보전의 필요성은 경기도에서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경기도는 도내 가장 먼저 양평군을 선정하고 엄격한 심사 끝에 한국토지박물관(관장:
홍경표)과 1998년 9월 3일 용역 계약, 국립중앙박물관 한병삼씨와 한양대학교 박물관
주혁, 경희대 허흥범, 건국대 정학수 교수를 투입해 1999년 10월 2일까지 지표조사를
마쳤다.
물론 양평군 내 총 223개 유적지 조사에는 총 21명의 전문 인력이 투입돼 가장 방대한
조사로 전무후무한 용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토지 박물관 지표조사 결과는 “옥천리에서 북쪽으로 길을 달려 사나사로 들어가는
계곡 사이의 콘크리트 포장도로변의 계곡에 있다. 현재 나지막한 철책으로 둘러져
보호되고 있으며 계곡물이 흘러 잠겨 있다. 지름 약 30cm, 깊이 83cm이며 계곡
속의 바위에 둥그런 구멍이 패어 있다. 자연적인 바위 구멍이 유수에 의해 침식되어
나타난 현상으로 보이나 인근 함양성지의 축성과 관계된 함씨 성주의 출생 설화와
연관되어 중요시한다.”라고 말했다. 이는 경기도에서 연관된 문화유적지로써 중요성을
인식되었음에도 양평군과 경기도 후속 조치가 없음이 아쉽다.
 
이에따라 양평지역 향토사학자들은 이미 지역 비지정문화재로 관리되고 있는바 양평군 향토유적 지정 절차라도 밟아 체계적인 지역 상징 유적을 보존 관리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024년 2월25일 태허 박현일 양평군정연구원장(한국사 1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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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연 2024-03-11 20:58:43
함왕혈을 문화유적으로 보전하여 양평 스토리텔링 콘턴츠화하면 좋겠습니다
의원님, 감사드립니다. 꼭 그렇게 되기를 부탁드립니다.

함상균 2024-02-26 13:50:19
유서깊은 함왕혈이 재조명되어 보존유물로 지정되어야 합니다 박현일 의원님 수고많으십니다

함용석 2024-02-26 12:32:22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