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2천년 상고사 역사적 고찰
양평 2천년 상고사 역사적 고찰
  • 양평백운신문
  • 승인 2024.02.12 22:36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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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양평고대사와 함왕혈 역사적 고찰

함왕혈은 곧 통합과 국난극복 민족정신 성지 혹자는 말한다. 역사적 근거와 함왕성지와 연계성,학술적 뒷받침이 떨어져 단순 토착 설화가 아니냐고 말이다. 감히 말한다. 한강유역 아니 대한민국 전체를 통털어 이처럼 우리 상고사중 방대한 유력과 유물, 지명이 총망라된 건국 시조 탄생설화가 단 한곳이라도 있느냐고 반문해본다. 

함왕혈은 2천년동안 전승되는 설화치곤 양평지역의 뿌리이자 정신으로 발현되어 삼한통합, 후삼국통합, 고려건국, 대몽고항전, 거란 퇴치, 임진왜란, 구한말 의병본거지, 6·25한국전쟁까지 오롯이 민족 국란을 극복하고 한민족 통합의 역할을 수행한 함왕성지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자웅동체 유적이다. 

특히 2천년간 명백을 유지해오는 함왕성지와 함왕혈의 상호 연계성에 대한 역사적 근거는 물론 함왕봉, 함왕골, 함왕각, 편전마을(철기 제작), 봉화대, 돌거북상 등 숱한 연계된 유적과 한강변 전략적 요충지로 연계된 부용산성과 파사산성, 봉성, 고산성 등도 이를 입증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전국에 있는 유사한 탄생설화인 제주 삼성혈과 계림설화, 경주 나정, 경주 표암, 나주 문바위 문암과 견주어 불 때 2500만 생명수 공급하는 상수원 발원지에 위치한 함왕혈은 그 역사적 가치뿐만 아니라 수도권 역사교육장으로서 손색이 없다 할 것이다. 

특히 양평 함왕혈 관련 역사 발굴 등 상고사에 대한 군민의 관심과 갈증은 삼한과 삼국시대 잃어버린 일천년 역사에 대한  학계와 재야사학계 등 양쪽 모두에게 던지는 과제라  아니할 수 없다.

설령 양평 상고사에 대한 역사적 고증이 조금 미흡하더라도 양평 고대사를 연구하는데 기초 자료가 되고 참고할만한 아이디어를 제공함으로서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미발굴 향토유적을 세상에 드러내고 양평 고대사 연구 지평을 넓혀가는 적극적인 학문탐그 자세라 아니할 수 없다.

실제 일본과 중국에서는 우리 사학계 연구인력보다 무려 수백배 많은 전문인력을 투입, 동북공정 등을 떠나 과거 신화로 믿고 있는  영역을 적극 연구해 역사로 편입하는 등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양평 상고사 또한 학계와 재야 사학계 할 거 없이 모두 끊임없이 연구해 미래씨앗이 될 양평군 역사 자산, 향토 유적 자산을 축적하는 것이 바람직한 자세며 양평군과 양평문화원 등 서로 유기적인 협력과 정보 공유를 기대해본다.

이번 양평군 상고사 역사자료 취합과 발굴에 도움주신 많은 향토사학지와 군민들게 감사드린다. 이번 기고문이 더 많은 양평 뿌리찾기에 밑거름이 되길 기대한다. 

2. 함왕 주악 함혁의 탄생

원삼국시대(삼국시대 전기, 철기시대 후기, 삼한시대 후기, 기원전 3세기~서기300년) 옥천면 용천 2리 사나사 입구 계곡에 작은 구멍이 있는데 여기서 함씨 시조인 성주 한 왕이 탄생했다고 전한다. 

부족사회가 번창하던 먼 옛날, 함왕혈 부근에 한 씨족이 무리를 지어 살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의 부족을 형성하여 살아가길 열망했으나 그 무리를 이끌어 나갈 적격한 지도자가 없어서 향시 문제가 돌출하였고 또한 해결할 수 없어 고심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지도자를 선정해달라고 하늘에서 제사를 드렸다. 그러던 어느 날 함왕혈에서 튼튼하고 총명한 눈동자를 가진 옥동자가 나왔다. 그들은 그를 하늘이 점지하여 준 자기의 지도자라 생각하고 왕으로 추대하였다. 

그리하여 함씨들은 자기들이 열망하는 국가를 형성했고, 자기들의 성지를 축조하기 시작하면서 날로 번창하여만 갔다. 번창일로를 걷던 양근 함씨 부족들은 얼마 가지 못하여 다른 부족들의 침입으로 오랜 세월 동안 이룩한 성지가 무너지고 위대한 왕도 죽어 함씨들의 국가는 결국 쇠퇴의 길로 접어들어 망하고 말았다. 

그 무렵 그 옆을 지나가던 과객이 말하기를 “어머니를 저렇게 버려두고 자기들만 번창하길 바라니 국가가 멸망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그제야 양근 함씨들은 선조인 왕이 태어난 바위를 밖에 두고 성을 쌓았음을 깨달았다. 

그 뒤 그들은 성지를 양근 함씨 시조의 어머니인 바위를 중심으로 성을 쌓아 번창하려 하였으나 함씨 왕국은 또 다른 지도자가 나타나지 않아 국가는 융성하지 못했다. 양근 함씨들이 모두 흩어져 살아가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까닭이 있는 것이라 한다. 

그 후 현재에 이르도록 양근 함씨 후손들이 그 바위에 보호책을 설치하고 제사를 지내는 선조로 모시고 있다.

3.만주원류고와 삼국사기로 본 함왕혈 용출 설화 

만주원류고와 삼국사기에 보면 기원전 7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 즉 삼한 한반도에서 삼한이 태동할 당시 부여는 요동유역 북쪽에 위치해 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사실 동명왕 주몽은 부여의 시조라기보다는 이미 부족국가 기틀을 다진 부여를 기원전 1세기에 유입돼 부여지역을 점령, 통합하여 새로운 국가체제를 다진 도래 집단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훗날 고구려를 건국한 동명왕 주몽 또한 천제인 해모수를 아버지로, 강물의 신인 하백(河伯)의 딸 유화(柳花)를 어머니로 하여 알에서 태어났다. 주몽 이전 부여 원류를 대표하는 집단은 졸본 부여의 소노부 연개소문(淵 씨) 가문의 윗대 조상이라 할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천남생(泉 씨)의 비문을 살펴보면, 그 가문은 ‘샘, 泉’에서 솟았다는 신화를 가지고 있다. 천(泉)은 연(淵)과 통할 뿐 아니라, ‘요동삼한습유기’에 따르면 지씨(池 씨)는 동부여에서 나왔고 동부여 금와왕 출생 신화에 등장하는 신비로운 연못(곤연, 鯤淵)을 뜻하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 상고사 탄생설화나 신화에서 연못, 우물, 샘터 등 생명수인 물(水)과 관련된 대표적인 의미 있는 사례가 비롯 양평군 옥천면 용천리 사나사 초입에 위치, 2천여 년 동안 성스럽게 받들어지는 함씨 왕이 솟았다는 함왕혈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한반도에서 유사한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대표적인 것이 해운대 장산국 하씨(河), 삼성혈에서 솟은 제주 고씨(高), 경주 이씨의 혈맥이자 시조가 하늘에 내려와 처음 목욕했다 전해져 경상북도 기념물 54호로 지정된 광림대(光臨臺)의 석혈(石穴), 경주 김씨의 시조 알지가 태어났다는 사적 제19호 경주 계림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특히 신라 시조인 박혁거세 거서간의 알이 발견됐다는 신화가 서린 경주 나정 또한 ‘물(水)’과 관련된 우물 터 유적이다. 또한 포항의 기계 유(兪) 씨들의 시조 탄생 설화도 최근 유정(兪井)의 실체가 발굴됨으로써 설화가 역사적으로 현실화되고 있는 사례이다. 기계 유씨 시조인 신라인 유삼재공은 붉은 강모에 싸여 하늘에서 내려왔는데 사람들이 그곳에서 집을 지어 살게 해 벼슬이 아찬에 이르렀다. 그 집터에서 최근 우물이 발견돼 기계 유씨들이 유허비를 설립했다. 

물론 역사적 사실과 상징성이 강한 설화가 만나 전승되기 때문에 이러한 성지를 문화재로 지정 양평 함왕혈(楊平 咸王穴)역사적 고찰 019 함왕골 : 사나사계곡 상류의 함왕골, 상류로 갈수록 수량이 줄어들고 계곡 폭이 좁아져 야생동물의 천국이다. 

함왕이 탄생했다는 설화가 전해져 양평군민들의 성지로 보존되어 있는 함왕혈 함왕 주악(周鍔), 함혁(咸赫) 탄생 설화 성지 및 보존하는 것은 실체적 역사에 보다 한걸음 다가가는 의미 있는 일이다. 

창녕조씨 시조 태사공 조계룡(曺繼龍)이 탄생한 곳 또한 화왕산성 용지(龍地)라는 설화가 내려오고 있다. 이곳에 창녕조씨들은 “창녕조씨득성지지”라는 비석을 세웠다. 화왕산 정상에 9개의 못과 3개의 샘 가운데 가장 큰 용지에서 태어났다 하나 흔적없이 매몰된 것을 후손들이 1958년 찾아내 대대적인 중수공사를 마치고 현재 3개의 못을 복원해 놓았다. 

우리나라에 전해오는 용생설화나 난생설화, 현신 탄강설화, 동굴 탄생 설화 등이 모두 물과 상통하고 있으며, 특히 함왕혈 함혁왕 주악 용출 설화는 어머니의 자궁 모양의 세계에서도 그 지질을 찾기 어려운 선캄브리아기(함왕혈 27억년 추정)에 형성된 경기변성암 복합체 흑운모편마암으로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암석인 바 그 의미를 새롭게 하고 있다. 

즉 일반 바위들이 아닌 지구 초창기 형성된 독특한 석질을 발견하고 이를 탄생설화와 연계시킨 함왕설화는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하며 경외심 가득한 함왕산성과 법신불 노사나부처님 이름을 딴 사탄천에 함왕혈이 있음을 볼 때 아득한 설화가 스토리텔링으로 살아나 실제 역사적 근거를 통해 문화재로 거듭나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 고대사를 재정립하는 뿌리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이렇듯 한반도 내에서 물의 신과 관련된 민족의 정체성을 부여하고 나라의 위기 때 마다 민족혼을 되살려 국민 통합설화로 응집력 있는 시조 탄생 설화는 몇 곳 되지 않지만 양평 함왕혈을 제외한 대부분 문화재로 지정돼 국가나 각 자치단체에서 관리, 보전, 역사적 교육장소 및 향토기념물로 관리되고 있으나 양평 함왕혈은 가장 중요한 현존 유적임에도 아직까지 문화재 등록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아 수도권 2500만 생명수를 공급하는 팔당 상수원 본체인 양평군민의 아쉬움을 사고 있다. 함왕혈이 위치한 옥천면의 경우 해마다 ‘구슬처럼 맑은 샘’ 이란 뜻으로 해마다 옥천 물 축제 때 임금님 진상수 재현행사를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샘물이 용출하는 우물(약수)이 있다 하여 오늘 날까지 옥천면으로 칭하고 있다. 

이는 옥천수의 상류인 함왕혈이 위치한 용천리 계곡의 상징적 의미, 즉 이무기가 용이 되어 용문산으로 승천한 성스런 곳의 가장 핵심적 위치에 함씨 왕이 태어난 함왕혈이 존재하는 의미를 부각시켜 준다.

 

2024년 2월13일 태허 박현일 양평군정연구원장(한국사 1급 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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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상균 2024-03-03 12:38:07
함씨들은 종친들끼리도 무뚝뚝하고 표현을 잘 못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것에는 무덤덤한 습성들이 있습니다. 금번 연안이씨의 "함왕혈 테러 사태"에 대해 관련 지자체 부서팀장에 전화를 했더니 역사적 사료를 가져오라는 원론적인 말만 합니다. 공무원들의 전형적인 자기안위의 형태죠... 박현일 의원님의 귀중한 연재기사를 통해 함왕혈이 재조명되고 보존문화재 및 또는유산으로 지정되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

함은식 2024-02-26 20:52:07
박현일대표님 수고하십니다.
사나사도 함씨 시조 함혁왕, 중시조 함규를 기리는 사찰로서의 정체성을 함유하고 있다고 사료되는 바이며 함씨후손들이 그 사찰 고유의 명맥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함용석 2024-02-26 18:52:06
박현일 대표님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 유의하시고 하시는 모든일들이 뜻대로 소원성취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함정기 2024-02-26 17:01:26
함씨 성을 가진 저로서도 몰랐던 양평지역의 역사적 고증을 일깨워준 박현일 양평군 의원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본문에도 내포되어 있듯이 양평군민의 재산인 함씨의 성지가 양평군민의 역사적 성지로 복원되기를 기대 해 봅니다. 전국의 함씨 종친들께서는 한국사 1급/논술/지도사 자격증까지 보유한 진정한 양평인 박현일 의원을 존경하고 지지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