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 진상 양평 산나물과 개혁, 공정 양근군수 유득공!
임금님 진상 양평 산나물과 개혁, 공정 양근군수 유득공!
  • 양평백운신문
  • 승인 2023.04.11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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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조대왕때 실학자 발해고 저자 양근근수 유득공
(사진설명 : 양평산나물축제때 용문산산나물 임금님 진상식 장면)
(사진설명 : 양평산나물축제때 용문산산나물 임금님 진상식 장면)

조선시대 입춘날에 입춘절식이라 하여 궁중에서는 오신반(五辛飯)을 수라상에 올렸고 민가에서는 세생채(細生菜)를 만들어 먹었다.

'경도잡지'와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경기도 산골지방(畿峽)의 육읍[양근(楊根). 지평(砥平). 포천(抱川). 가평(加平). 삭녕(朔寧)연천(漣川)]에서는 총아(蔥芽. 움파)·산개(山芥. 멧갓)·신감채(辛甘菜. 승검초)등 햇나물을 눈 밑에서 캐내어 임금께 진상하였으며 궁중에서는 이것으로 오신반을 장만하여 수라상에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이중 양근과 지평이 합하여 만들어진 지금의 양평(楊平) 햇나물을 최고로 여겼다.

각설하고 유득공(柳得恭)은 조선 후기 정조때의 실학자이며 문신으로 본관은 문화 유씨(양평읍 회현리 집성촌)자는 혜보(惠甫) 또는 혜풍(惠風) 호는 영재(泠齋), 영암(泠菴), 가상루(歌商樓), 고운거사 (古芸居士), 고운당(古芸堂), 은휘당(恩暉堂)이며 아버지는 진사를 지낸 유춘(柳瑃)이며 어머니 남양 홍씨는 이성현감을 지낸 홍이석의 딸 사이에서 1748년 한양에서 태어났다.

유득공의 증조할아버지 유삼익은 서자로 태어나고 할머니 우계 이씨 역시 병조참의와 황해도관찰사를 지낸 이서우의 서녀로 태어나고 외할아버지 홍이석 또한 서자로 태어나서 유득공 역시 서얼로 태어났다.

유득공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암기력이 뛰어났다. 득공이 4살때 아버지 유춘이 26살 젊은 나이로 요절을 하자 어머니 남양 홍씨는 어린 유득공을 대리고 친정이 있는 경기도 화성군 남양면의 친정집 근처로 이사를 했다.

유득공은 화성에서 성장하다가 1757년 8살 때 한양으로 다시 이사를 해서 성장하고 실학 북학파의 박지원의 문하에서 이덕무, 박제가와 함께 수학했다.

1773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774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778년 청나라 심양을 여행하고 돌아오고 후일 유득공은 발해고를 쓰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779년 규장각검서(奎章閣檢書)를 시작으로 관직생활을 시작했다.

유득공(1748년생)은 이덕무(1741년생), 박제가(1750년생), 서이수(1749년생)와 함께 규장각 4검서라고 하는데 이덕무, 박제가와는 평생지기로 지냈다. 특히 유득공은 규장각검서를 지내면서 많은 역사 서적과 다양한 서적을 읽으면서 학문을 넓히고 시짓기를 배우고 시를 쓰는 것을 좋아했다.

1786년 그를 아끼던 정조의 배려로 포천 현감을 지내고 이어서 제천군수 ◇"1788년 양근군수"로 재직하다 1년만인 1789년초 사임한후 궁궐 광흥창주부, 사도시주부를 지냈다.

유득공은 발해고를 집필한 직후 1788년 양근(楊根)군수에 승진 부임하자마자 토호세력 적폐청산 일환으로 지방호족들이 양근 지역민에게 행패를 부린 일을 대대적으로 조사하였다.

유득공은 『 대전통편(大典通編)』의 법조문대로 지역민을 폭행한 양반들을 엄중 처벌하여 공정하고 바른 양근의 기강을 바로잡았다. 이 일로 그의 명성은 양근 지역사회뿐 아니라 조정에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특히 양근군수로 있을 때는 양반도 법을 어기면 매를 때렸다는 기록이 있다. "양근군수가 되었을 때였다. …호족은 백성들에게 기쁘면 술을 주지만 화가 나면 명분으로 꾸짖고 사사로이 묶고 마음대로 때렸다. 이를 비통하게 여긴 나는 법으로 바로잡았다. 한 연장자가 내 앞을 지나가면서 '자네가 다스린 지 수십 일에 양반 8명을 태형에 처했으니 잘못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나는 '나랏일을 보는 데는 <대전통편>(大典通編) 하나가 있을 뿐인데 그 책에서 양반만을 위한다는 구절은 못 보았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양근의 호족들이 매우 두려워했다."(<고운당필기>)고 그의 청렴과 공정한 법치가 기록돼 있다. 특히 유득공은 조선 금석학 연구의 선구자이자 추사 김정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양근군수 시절 양근 사람이 밭을 갈다가 조그만 도장을 습득했다. 전문은 ‘선복신원’이라 했는데, 아래쪽 두 글자는 반절이 닳아서 흐려졌다. 위에는 된 해서로 관지가 있는데 ‘을묘’라는 두 글자였다. 구리 로 된 작은 함 속에 담겨 있었는데 상인이 이를 사가지고 철원군으로 들어갔다. 양근 군수 유득공 은 이처럼 기이한 금석유품을 좋아하였다. 소교에게 매일 철원까지 200리씩 달리게 하여 돈을 주고 그것을 마침내 구하고는 집에 수장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처럼 유득공의 금석학에 대한 열정이 대단함을 알 수 있다. 금석문 연구는 고대사에 대한 지식과 인식 없이는 매우 힘든 작업이다. 유득공의 수많은 저작들은 훗날 추사 김정희에게 갈증을 풀어주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바로 뒷세대 추사 김정희는 유득공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다.

한편, 유득공은 1년여 짧은 양근군수 시절 양평산나물에 관한 시를 써 양평 용문산의 나물이 예로부터 맛과 효능이 사료 속에 잘 나타나 있슴을 확인시켰다.양근, 지평 산나물은 세종실록지리지에 각종버섯의 토공과 산겨자, 승검초(신감채, 산당귀싹)와 같은 토산에 씌여있다.

성리학자 고봉선생은 이곳 용문산에 종을 보내 봄철에 나물을 뜯어다가 말려 겨울철 귀한 먹을거리로 삼았다는 일화가 '오음유고'에 전해온다.

양근군수를 역임한 실학자 유득공은"용문산의 두 나물로 선비를 먹이다"라는 시에서 용문산채의 뛰어난 맛을 표현하였다. 또 입춘지절 오신채라해서 국왕에 진상했던 5가지 나물중 양근, 지평, 홍천에서 조달했다.

유득공이 저술한 경도잡지 ( 1749-1807)를 보면 "입춘이 되면 산수가 좋은 경기도 육읍에서 움파, 멧갓, 승검초를 진상했다"고 진술했다. 당시 입춘전에 움파등을 길렀던 온돌형 온실이 고증을 거쳐 세미원 상춘원에 복원돼 있기도 하다. (※ 경기 육읍 : 양근, 지평, 포천, 가평, 삭년, 연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입춘조(立春條)에도 경기도내 산이 많은 6개의 고을, 곧 기협육읍(畿狹六邑) 양근(陽根), 지평(砥平), 포천(抱川), 가평(加平), 삭녕(朔寧), 연천(連川)에서 움파(葱芽), 멧갓(山芥), 신감초(辛甘草 - 승검초) 등 햇나물을 눈 아래에서 캐내어 진상하고 궁궐에서 겨자와 함께 무쳐 입춘채‘오신반’이라고 하여 수라상에도 올렸다고 양평 산나물 명성이 기록되어 있다.

이에앞선 해동잡록 (權鼈, 1589-1671) 김안국이 산나물 선물받고 화답한 時 "산나물 향기롭고 연하긴 지평현 용문(龍門)이 그만인데 그것으로 먼 데 손님 대접하면 후의 있음을 알리라 방장의 고량진미를 어찌 부러워 하리오. 한 바구니 속에 부귀영화도 저버리리..."라고 기록돼 용문산 산나물이 조선시대 한양에서 최고 인기였음을 반증하고 있다.

이밖에 민중의 삶을 대변하는 우리 민요인‘건드렁 타령’의 노랫말에도‘용문산채를 사시래요’라는 가사가 나올 만큼 용문산의 산나물은 명성이 자자했다

유득공은 1790년 8월 박제가와 함께 청나라 건륭제의 80세 생일을 맞이해서 축하 사절단으로 뽑혀서 북경에 도착했는데 마침 그 때 건륭제가 열하에 머물고 있어서 유득공은 박제가와 함께 열하까지 다녀오고 난양록(灤陽錄)을 집필하였다.

그 후 주자서(朱子書) 선본(善本)을 구해 오라는 정조의 왕명을 받고 두번째로 청나라 연경을 다녀오고 연행길에 있었던 일을 기록한 연대재유록(燕臺再遊錄)을 편찬했다.

1792년 가평 군수를 지내고 1800년 8월 풍천도호부사를 지낼 때 정조가 갑작스럽게 승하하자 관직에서 물러나고 전국을 유람하고 은거생활을 시작하면서 자신이 보고들은 것을 토대로 기행문, 소설, 역사서등의 많은 저술할동을 했다.

고구려가 지배했던 요동과 만주 일대의 역사와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의 역사를 연구하고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와 전통을 계승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역사서인 발해고(渤海考)를 저술하였다.

그 외에 경도잡지(京都雜志), 고운당필기 (古芸堂筆記), 앙엽기(盎葉記), 사군지(四郡志)등을 집필하였다. 1807년 10월 59세를 일기로 졸하셨다.

박현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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