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과 참 지도자상
다산 정약용과 참 지도자상
  • 백운신문편집부
  • 승인 2005.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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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조선왕조 후기 실학과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학자로서, 우리 양평과도 인연이 깊다. 많은 시간을 양평에서 보내셨기 때문이다.

 

   평생동안의 연구를 통하여, 당시의 썩어 문드러진 나라와 세상을 구제할 이론과 실천방법를 강구하느라 온갖 정성을 다 바쳤던 분이다.

 

 그가 연구했던 구제책의 가장 큰 부분은 청렴한 도덕성을 지녔으며, 실무를 처리할 전문적인 식견을 지니고, 병들고 부패한 사회와 나를 변화시키고 개혁할 역량을 지닌 지도자들이 배출되어야만 나라와 인민이 구제될 수 있다고 믿고, 지도자들이 갖출 요건의 연구에 심혈을 기울였었다.

 

  그렇다면 당시의 정치체계 아래서의 주장이긴 하지만, 다산은 어떤 사람이 지도자라고 여겼을까?

 

“윗분을 섬기는 사람을 백성[民]이라 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을 선비[士]라 하니, 선비란 벼슬하는 사람[仕]이어서, 벼슬하는 사람이란 모두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이다”라고 하여 벼슬아치들은 모두 지도자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다산은 그의 저서에서 지방관, 그 중에서도 특히 고을을 책임 맡은 수령 즉, 원님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과 능력에 대하여는 그의 모든 저작에서 거듭거듭 자세한 사항들을 기술해 놓았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다산은 지도자들의 범위를 좁혀서, 곧장 인민들과 직접 관계를 맺고 실제의 정치와 행정이 이루어지는 지방정치에 역점을 두고서, 국왕의 명을 받아서 지방을 책임지고 있던 수령, 즉 유수ㆍ목사ㆍ부사ㆍ군수ㆍ현감ㆍ현령이야말로 지도자의 반열에 넣어야만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수령의 책임은 임금과 견줄만큼 막중하고 그 만큼 큰 권한을 지녔다고 여겼음은, 수령이야 말로 중추적인 지도자라는 주장이었다.

 

  다산은 무엇보다 먼저 청렴한 지도자의 도덕성을 요구하였다. 썩고 병든 사회를 구제해야 할 지도자라면 도덕성이 무엇보다도 중요시된다고 보았었다.

 

   다음으로, 그의 <목민심서>와 여타의 많은 글에서 수없이 주장하였듯이, 지도자라면 실무능력에 밝은 전문서을 지녀야 한다고 여겼다.

 

   전문성이 없고서는 아랫사람의 농간에 휘말려 백성을 괴롭히는 역할에 가담하는 것이니, 어떻게 지도자라 말하겠느냐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도자는 당연히 철저하고 투철한 개혁의지의 소유자여야 한다고 여겼다.   개혁을 하지 않고서는 썩어 문드러져 있는 나라에서, 개혁의지에 불타지 않고는 지도자가 될 수 없다고 보았다.

 

   바른 세상, 정의롭게 잘 사는 나라를 새롭게 건설하려면, 예나 이제나 도덕성, 전문성, 개혁의지가 투철하고, 연약한 인민을 두려워 할 줄 알며, 식견이 풍부한 자들이 양평의 지도자로 배출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새삼 머리에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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