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계곡, 천혜의 휴식처 용문면
산과 계곡, 천혜의 휴식처 용문면
  • 백운신문편집부
  • 승인 2005.06.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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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문사에는 일주문이 있으나 사천왕문이 없다.  천년이 넘게 산 것으로 추정되는 은행나무가 천왕목(天王木)으로 자리 잡고 있어 사천왕문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용문면은 양평의 정기를 상징하는 용문산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면 전체가 산 마을 특유의 한적함과 풍요로움을 지니고 있다.

  고즈넉이 이어지는 산세, 굽이굽이 펼쳐지는 계곡, 아담한 폭포와 작은 못, 맑은 시냇물을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용문면은 우리 선조의 발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봉황정, 택승정, 운계서원등 선인들의 기백과 혼이 서린 문화재가 산재해있다. 

  상원사, 용문사 등의 유서 깊은 산사 또한 오랜 세월의 정취가 배어 있다.

 

 

 

■ 운계서원 (용문면 덕촌리)

  선조 27년(1594년) 조욱선생이 창건했다. 발아래 계곡에서 피어오르는 자욱한 안개가 마치 구름과 같다 하여 백운서원이라고도 불리었다.  규모는 정면 3간, 측면 2간이다. 원좌와 주초석을 마련하고 큼직한 장대석을 깔고 있는 것을 보면 당시 매우 공들여 지은 건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붕은 팔작으로 한식 골기와를 얹었으며 첨자에는 단청을 칠하였다. 조욱 선생외에도 다섯분의 위패를 모시고 매년 제향을 올리고 있다.

 

 

■ 봉황정과 택승정 (용문면 광탄리)

  광탄교를 지나면 곧 봉황정 입구가 나온다. 조촐한 문을 들어서면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돌계단이 독특한 운치를 자아낸다.

  돌계단을 지나면 무성한 숲 사이로 봉황정이 모습을 드러낸다. 봉황정은 조선 인조 2년 (164)에 남원양씨의 이조참의 양응청과 병사양응함이 창건했다.

  봉황정에서 5분 거리에 택승정이 있다. 조선초기 대학자이며 홍문관 대제학을 지낸 눌제 양성지가 창건한 옛 선비들이 궁술을 연마하던 도장이었다.

 

 

■ 상원사 (용문면 연수리)

  상원사 역시 우리 겨레의 역사와 함께 해온 전통사찰이다. 창건시기가 뚜렷하지 않으나, 세조가 이절에 거동하였다는 기록이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으며 고려시대 성찰로서 조선시대까지 존속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순종 원년(1907) 왜병이 이 지역에 집결해있던 의병을 소탕하기 위해 불을 질러 법당만 남겨놓고 모두 타 버렸다. 

  1934년에 주지 최경언이 승주하였으나, 6ㆍ25사변 통에 다시 전소되는 비운을 맞는다. 1970년대 말쯤에 이르러서야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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