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3.1운동, 도내「최대규모」였다
양평 3.1운동, 도내「최대규모」였다
  • 박현일
  • 승인 2005.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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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5회에 걸쳐 2만 850명 참가
 

양평 3.1운동, 도내「최대규모」였다

총 15회에 걸쳐 2만 850명 참가



  의향 양평의 3.1운동은 경기도에서 가장 큰 규모로 가장 치열하게 전개된 사실이 확인됐다.

시ㆍ군

횟  수

인원(명이상)

양  평

15

20,850

인  천

2

320

수  원

26

10,120

시  흥

24

10,580

고  양

35

9,220

용  인

7

2,350

광  주

12

8,000

가  평

3

980

여  주

7

6,401

개  성

18

7,300

경기도전체

282

166,877

 

1919년 3월 1일 서울을 비롯하여 평양ㆍ진남포ㆍ안주ㆍ의주ㆍ선천ㆍ원산 등지에서 발발한 3.1운동은 요원의 불길처럼 방방곡곡으로 번져가며 전국적이며 거족적인 독립 시위운동으로 발전하여 갔다.


  경기도내에서는 3월 1일 개성의 한영서원 학생들이 계획하여 3일부터 7일까지 근 일주일간 대대적인 시위가 전개되었고, 수원에서도 3월 1일 화홍문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3월 3일 고양군 동막, 5일~6일 강화군 부내, 7일 인천, 9일 고양군 한지면, 10일 양평군 문호와 파주군 교하로 불길처럼 번졌다. 특히 경기도 항일독립운동사(500~503쪽)에 따르면 양평군의 경우 3월 1일부터 4월 15일까지 발발한 경기도 내 군중시위중 가장 두드러졌다. 실제 이 기간중 도내 총 282회 참여인원 16만 6877명중 양평에서의 3.1운동은 총 15회에 걸쳐 2만 850명이 참여, 참여군중이 도내 14%에 이르러 최고치를 기록한 사실이 본지에 의해 확인됐다. (표참조)


  우리 군의 3.1운동은 규모나 양상이 방대하면서도 치열하고 극렬해 많은 사람들이 왜경의 총에 쓰러지고 체포되어 모진 옥고를 치뤘으며, 많은 동네에 불까지 질러 초토화 되다시피 했다. 양평의 3.1운동을 일자별로 나열하면 3월 10일 서종면 문호리 200명을 시작으로 3월 23일 청운면 용두리 장날 200명, 3월 24일 양평장날 1,000여명, 같은날 양평읍 공흥리 400명, 3월 29일 강상 교평리 100명, 3월 30일 용문면 광탄리, 3월 21일 강하면 사무소 300명, 4월 1일~2일 양서면 도곡리 헌병훈련대앞 3천명, 4월 3일 옥천면 4천명, 4월 3일 지제 곡수리, 양동 석곡리 300명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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