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땅 間島지킴이 이중하선생 누구인가?
우리땅 間島지킴이 이중하선생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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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1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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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읍 공흥리 출생, 청과 국경담판 간도회복 근거
이중하(李重夏)선생은 1846년 11월9일 양근군 갈산면 공흥리 315번지에서 현감 이인식(寅埴)의 아들로 출생했다. 전주이씨 광평대군 후손으로 27세에 과거에 급제 진사(眞士)가 되고 36세 공조좌랑, 1885년 39세에 통정공조참의를 재직한 후 함경남도 안변부사로 부임하게 된다. 선생은 정해감계(국경)담판을 대임을 마치고 내직의 명을 받아 당상관 정상품 승정원 부승지에 올라 왕명을 출납하였고, 형조참의, 돈녕부도정, 충청도암행어사를 거쳐 종2품 공조참판(상공부차관)과 중추원 일등의관, 평안도관찰사(도지사), 경상북도관찰사를 거치면서 선정을 베풀었다. 장례원경을 거쳐 종1품에게 주어지는 규장각 제학에 올랐으나 1910년 한일합방과 더불어 나라를 지키지 못한 것을 크게 뉘우치며 관직을 사임하고 양평 공흥리로 낙향했다. 조선총독부에서 이중하선생을 회유할 목적으로 ‘후작’의 작위와 은사금 ‘삼천원’을 주려하자 “도둑이 내리는 작위를 어찌 내가 받을 것인가”하고 물리쳤다. 이중하선생의 큰 아들 이범세는 1874년 12월 4일 태어나 12세에 과거에 급제 28세에 정상품 당상관에 오르고 비서원승(구 승정원 승지)이 되어 왕명을 출납했다. 광무11년에 광성학교를 설립하여 육영사업에 손댔으나 한일합방이 되자 아버지를 따라 양평으로 가솔을 이끌고 낙향했다. 12년간 양평에서 후학을 양성하다 시대일보를 인수, 사장에 취임했으나 총독부외 구금과 압수, 납치에 못이겨 신문사 문을 닫고 만다. 현재 이중하선생의 증손자인 이규형씨와 규청씨가 생존해 있으며 손자인 이흥종씨가 한국전쟁 피난때에도 지켜낸 ‘이아당문집(아들 이범세가 쓴 이중하 문집)’을 보관하고 있다. 이중하선생 손녀인 이석희여사(90세)도 생존해 있다. 이 여사는 전국에 있는 송덕비 76기중 총 10기가 이중하선생의 송덕비임을 밝혀 냈다. 이인호 전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이 이석희씨의 딸이자 이중하선생의 외증손녀이다. 이중하선생의 천부적인 외교적 기질을 이어받았음인지 러시아 대사까지 역임했다. 이중하선생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간도땅을 이젠 우리 민족, 남ㆍ북한이 함께 되찾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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