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정치와 호국영웅
기억의 정치와 호국영웅
  • 양평백운신문
  • 승인 2015.05.16 07: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의정부보훈지청 선양담당 오제호
『보훈의 역사와 문화(2012, 김종성 著)』에서 “기억한다는 것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현재의 시점에서 본다는 것이 전제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정치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즉 기억의 정치는 어떤 역사적 의미를 갖는 장소나 기념물 속에 들어 있는 기억을 드러내어 국가정체성이나 국민통합과 같은 정치적 함의를 갖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기억을 제도화하는 것은 국가에 대한 애착심과 신뢰를 갖게 하고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했다. 특히 저자는 보훈을 위한 기억의 정치의 주요 수단으로 장소와 기념물을 거론했는데 아래에서는 그 새로운 매개로 호국영웅을 들어보고자 한다.

정치와 매개되는 기억의 형태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으로는 기념을 들 수 있다. 이 용어는 한자로 記念, 紀念, 祈念의 세 가지로 표기되는데 각각 기록성, 시간성, 기원성을 가리킨다. 이러한 기념의 속성은 기억의 정치와 관련해서 우리로 하여금 다음의 이유로 기념에 주목하게끔 한다. 첫째 기념은 공적․제도적 기억과 연관되는 점, 둘째 기념은 허구가 아닌 객관성과 사실성이 바탕된 기억인 점, 셋째 기념은 지속성과 주기성을 가지는 점, 넷째 기념은 의례성과 교도성(敎導性)을 가진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기억의 정치는 기억, 특히 기념을 통해 국가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민통합을 이룩하는 것이 그 요체이다. 이러한 점은 정치 일반에 고루 적용되는 사항이나, 특히 호국의 기억을 되살려 국가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민을 통합하는 것이 주요 기능인 보훈이라는 특정 분야의 정치와 긴밀히 연관된다. 이를 위해서 국가보훈처는 호국의 장소를 보존하고 현충시설을 건립하며 기념행사를 실시하는 등 ‘보훈선양’으로 통칭되는 시책을 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무정물(無情物)에 대한 선양만으로는 기억의 정치로서의 보훈을 완전히 달성할 수는 없다. 호국의 장소를 만들어내고, 현충시설의 주체가 되며 기념행사의 대상이 되는 인물에 대한 선양이 필요하다. 이러한 인물에는 넓게 보면 국가유공자 모두가 해당될 것이나, 이들 중에서도 전쟁 등에서 뛰어난 활약으로 구국에 일조하여 그 행적이 국민에게 본받아 마땅한 것으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위인을 가리키는 호국영웅은 특히 기억의 정치의 대상이 됨직하다.

우선 호국영웅에 대한 기념은 개인적․불규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적․제도적 기억과 연관되고, 허구가 아닌 객관적 사실로서 기록된 역사이며, 호국영웅에 대한 기억은 항시적이고, 후대에 교훈이 될 만한 내용을 담는 점에서 기존의 무정물에 대한 기념에 뒤지지 않는 기억의 정치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오히려 장소나 기념물의 경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소멸될 수 있으나 호국영웅은 역사기록으로서 소멸의 여지가 비교적 적다. 또한 호국영웅의 행적에는 무정물로 다루기는 어려운 우국충정, 동적인 활약상 등이 담겨 그 교육적 가치도 상당하다.

『국가보훈기본법』 제2조에는 보훈의 기억의 정치로서의 속성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즉 국가유공자의 숭고한 정신이 대한민국 국가정체성의 원천이고 그 기억의 선양을 통하여 국민통합과 국가발전에 기여함을 국가보훈의 기본이념으로 한다고 명기하고 있다. 즉 우리가 보훈이라는 기억의 정치를 통해 가장 먼저 기억하고 선양해야 할 대상은 국가유공자이다.

특히 85만여 국가유공자 중 호국영웅이라 일컬어지는 분들에 대한 기억은 보훈선양의 기본인 것이다. 물론 기념물이나 장소 등을 통한 보훈선양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보훈선양을 위한 기념물이나 장소가 있게 한 것이 호국영웅을 위시한 국가유공자임을 고려하면 호국영웅에 대한 기억, 그를 통한 정치로서의 보훈이 우선 이루어져야 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의정부보훈지청 선양담당 오제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