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의 충무공과 6·25의 호국영웅
임진왜란의 충무공과 6·25의 호국영웅
  • 양평백운신문
  • 승인 2015.04.23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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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정부보훈지청 선양담당 오제호
韓의 오천년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 할 수 있을 만큼 수많은 외침을 겪었다. 천여 건에 이르는 외침을 극복하고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활약으로 조국을 수호한 영웅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조국이 존망의 기로에 놓인 전쟁 상황에서 호국영웅의 활약은 필수적이었고 이들의 이름은 청사(靑史)에 길이 남겨짐이 마땅했다. 이에 아래에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쟁인 임진왜란과 6․25전쟁의 호국영웅 활약상을 조명해보고 그들이 후대에 얼마나 알려져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임진왜란은 1592년부터 7년간 일본의 침략을 격퇴한 전쟁이다. 개전 20일 만에 수도가 점령당하고 2달 만에 평양이 함락되는 등 국가의 전쟁수행체계가 완전히 무너진 상황이었던 만큼 개인의 영웅적 활약이 국가수호를 위해서는 필수적이었다.

이에 충무공․김시민․권율․유성룡․곽재우․고경명․정문부․정인홍․김천일․유정․휴정 등 뛰어난 지휘관의 활약 속에서 왜를 격퇴할 수 있었고, 이들의 이름은 청사에 길이 남겨졌다.

특히 충무공 이순신의 경우 임진왜란이라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호국영웅으로, 임진왜란 극복의 상징적 존재이다. 충무공이 옥포·당포·부산포·명량·노량 등지에서 거둔 23전 23승은 불리한 전황을 뒤집는 계기가 되었고, 전쟁의 치욕과 상처로부터 조선의 자존심을 지킨 보루였으며, 충무공이 품었던 정충보국의 정신을 본받아야 할 아름다운 선례로서 후대에 영원히 전해질 수 있도록 하였다.

때문에 임진왜란의 극복을 논함에 충무공은 필수불가결한 호국영웅으로 거론되는 것이다.

한편 6․25전쟁은 북한의 남침에 의해 1950년부터 1953년까지 이어진 전쟁이다. 개전 3일 만에 수도가 함락되고 개전 2개월 만에 부산 인근을 제외한 전 국토가 적화되어 대한민국은 존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그럼에도 전력이 절대적으로 우위였던 북한군에 결사항전하여 인천상륙작전을 통한 반격의 기반을 마련하고, 10㎢의 자유민주주의 영역을 수호해낸 데에는 호국용사의 활약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런데 6․25전쟁은 임진왜란과 달리 충무공 이순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면 6․25전쟁에도 영웅적 전적을 세운 호국용사가 있으나 대다수의 우리는 그들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6․25전쟁의 4대 영웅으로 일컬어지는 김동석 대령, 백선엽 장군, 리지웨이 장군, 맥아더 장군 등 이달의 전쟁영웅으로 선정된 분들만 40명이 넘는다. 이들의 공적을 살펴보면 그 하나하나가 모두 대한민국을 지킨 영웅으로 칭송받아 마땅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6․25전쟁은 대몽항쟁, 임진왜란 등과 마찬가지로 망국의 위기를 극복하여 국위를 보존한 최근래의 격전이었다. 이 과정에서 국가보훈처 선정 이달의 전쟁영웅 40여인 외에도 35,000여명의 무공수훈자를 비롯한 호국영웅의 헌신적 활약이 구국의 기반이었음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충무공의 전기는 서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으나 6․25 호국영웅의 전기는 그렇지 않다. 충무공의 이름이 실리지 않은 역사교과서와 6․25 호국영웅을 언급한 교과서를 찾기 힘든 사실에서도 우리가 이들을 소홀히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이에 6․25의 영웅 또한 충무공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구국의 위인이자 그 공적을 널리 알려야 할 선양의 대상이고, 예로써 대우해야 할 국가유공자이자, 위국헌신의 표상임을 오천만의 대한인은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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