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1897년) 대한 제국(1897년~)
조선 왕조(~1897년) 대한 제국(1897년~)
  • 김민수
  • 승인 2009.06.28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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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1897년) 대한 제국(1897년~)

 

 


김민수 서울 종로 체부동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유네스코에 제출한 <조선왕릉 및 대한제국 황제릉> 평가결과 보고서에서 ‘등재 권고’로 평가했으며 문화재청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한 ‘조선왕릉 및 대한제국 황제릉’은 스페인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서울시,경기도, 강원도에 소재한 조선 시대(1392년~1897년) 506년 동안 존속된 25대 왕과 왕비 및 사후 추존된 왕과 왕비의 릉 및 대한 시대(1897년~1910년) 황제와 황후의 릉 40기를 망라한 ‘조선 왕릉 및 대한제국 황제릉’이 유네스코(UNESCO·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된 것이다.

 

문화재청은 황실문화재를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하여  경운궁 석조전에 국립고궁박물관 대한제국관을 신설하고 경희궁,별궁,행궁,환구단,사직단,선농단,선잠단,경기전,장릉,준경묘 등을 흡수 통합하여 경운궁에 황실문화재관리소를 신설하고 궁, 단, 전, 능, 원, 묘를 체계적으로 관리하여야 한다.

 

1895년 명성왕후 시해사건으로 시신조차 불에 태워진 채 유해도 없던 명성왕후는 2년간 장례도 치르지 못했는데 고종이 1897년 10월 12일 대한제국의 광무황제로 즉위하며 명성왕후를 명성황후로 추존(追尊)하였고 11월 21일 명성황후의 장례식을 성대하게 다시 치르고 청량리에 장사 지내며 능호를 홍릉(洪陵)이라 하였다.

 

1919년 1월 21일 고종황제는 경운궁 함녕전에서 67세로 붕어(崩御)하였고 대렴(大斂)이 끝나자 1월 30일 오후 4시부터 남양주 금곡에 능을 잡고 산역(山役)을 시작하였고 명성황후가 묻힌 청량리 홍릉에서 천장이 시작하였으며 2월 12일 현궁(玄宮)을 열고 명성황후는 금곡으로 이장되었다. 3월 3일 발인한 고종의 장례행렬은 금곡으로 도착했고 명성황후와 고종은 3월 4일 합장하였다.

 

대한제국 고종황제릉 홍릉은 신도를 중심으로 좌우에 어도가 설치되어 참도(參道)가 3개의 단으로 되어 있고 월대로 올라가는 계단이 침전(寢殿)의 정면에 설치되어 있어 홍살문과 직선축을 형성하고 있으며 석물이 참도와 침전 사이에 배치되어 있다.

 

홍릉은 정자각(丁字閣) 이 ‘일(一)’자형으로 변화되었고,이름 또한 ‘침전’으로 변경되었으며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변경되었고 월대는 화강석의 장대석으로 기단이 축조되었고 바닥의 마감도 전돌로 되어 있다.문인석과 무인석이 차례로 마주 보고 서고,기린,코끼리,사자,해태,낙타,말이 순서대로 신도의 양쪽으로 정렬하고 있다.

 

유릉은 대한제국 순종황제와 순명효황후 민씨(純明孝皇后閔氏) 그리고 순정효황후 윤씨(純貞孝皇后尹氏)의 능이다. 대한제국이 건국되고 황제가 됨으로써 능역 조성도 명(明) 태조의 효릉(孝陵)을 본받았다. '一'자형의 정면 5칸, 측면 4칸의 침전(寢殿)을 세웠으며, 홍살문까지 기린·코끼리·해태·사자·낙타·말의 순으로 석수(石獸)를 세웠다.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홍릉과 순종황제의 유릉이 있는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의 홍유릉 경역은 대한제국 황실의 묘역이다. 홍유릉 경역에는 고종황제,명성황후,순종황제,순명효황후,순정효황후, 영친왕, 의친왕, 덕혜옹주, 이구 공이 함께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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