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교장 복원하여 임정기념관으로 활용하자
경교장 복원하여 임정기념관으로 활용하자
  • 김민수
  • 승인 2009.06.24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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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교장 복원하여 임정기념관으로 활용하자

 


김민수 서울 종로 체부동
 

 

중국 중경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41년 12월 일제에 선전포고를 하고 한국광복군이 미군특수부대(OSS)와 국내정진을 계획하고 침투훈련 중에 8ㆍ15 대한 광복이 되었고 의정원 회의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자격으로 귀국해 국민의 뜻에 따라 정부를 재수립하기로 결의했다.

그러나 미 군정은 임시정부 자격으로 입국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아 임정 요인들의 귀국이 지연되었고 결국 개인 자격으로 들어오는 조건으로 1945년 11월 23일 1차 귀국했으며 12월 1일 임정 요인들이 2차 귀국해 역사적인 첫 국무회의가 12월 3일 경교장에서 개최됐다.

이후 경교장에서 수시로 국무회의가 개최됐고 모스크바 3상회의 협정문이 발표되자 12월 28일 임시정부 김구 주석이 경교장에서 긴급 국무회의를 개최하고 반탁운동을 주도하며 12월 31일 임시정부 내무부 포고령을 선포하고 미 군정에 행정권의 이양을 요구하기도 했다.

강북삼성병원 옆에 있는 최창학 소유의 별장이었던 경교장(京橋莊)은 1938년 완공 당시 죽첨장(竹添莊)이라 하였으나, 김구선생이 경교장이라 개칭하였다. 1945년 11월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귀국한 김구선생은 19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안두희에게 암살되었다.

경교장은 남과 북이 각각 단독정부를 수립하려고 할 때 김구 선생이 남북분단을 막고자 1948년 남북협상을 추진한 곳이며 평생을 오로지 조국의 광복과 통일을 위해 헌신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백범 김구 선생이 서거한 대한광복운동,평화통일운동의 상징이다.

올해로 백범 김구선생 서거 60주기가 되었지만 진정한 역사적 의미를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경교장을 역사교육의 장으로 보존, 활용해야 한다. 대한광복운동, 평화통일운동의 상징인 경교장을 복원하고 임시정부기념관으로 활용하여 민족정기를 바로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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