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차향에 취하고…재첩맛에 반하고…
녹차향에 취하고…재첩맛에 반하고…
  • 신문사
  • 승인 2004.05.1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야생 녹차에 재첩국 한 그릇. 경남 하동은 5월이 ‘진국’이다. ‘웰빙’하며 구경하기에 딱 좋다.식당마다 디저트로 내놓는 것도 ‘메이드 인 하동’이 씌어진 하동산 야생녹차. 날씨가 뜨뜻해지는 5월 중순이면 섬진강 하류에 재첩들이 올라온다. 섬진강 팔십리길은 4월만 해도 벚꽃으로 난리였다. 하동의 하이라이트를 보여주듯 인파가 몰렸다. 대신 섬진강 따라 난 19번 국도는 꽉 막혔고,여유로운 강바람 드라이브를 즐기기는 어려웠다. 벚꽃,배꽃 가득 핀 4월이 지나면 5월의 하동은 여유로워진다. 눈과 입이 즐거운 웰빙투어 시즌이 찾아온다. 이즈음 하동여행은 녹차 한잔과 재첩국 한 사발이 필수다. 젊은 청춘남녀의 설레는 가슴을 자극하기 위해 지리산 형제봉에서 패러글라이딩대회(5월15∼22일)도 열린다. 자 이제 슬슬 하동구경이다. 운전대를 잡고 쌍계사쪽으로 거슬러 오르면 강변 산기슭에 허리 숙인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일단 정지. 듬성듬성 경사진 곳에 다닥다닥 붙어 야생차 수확이 한창이다. 큰소리로 물어보니 “야생차잎 따러 구례에서 왔다”고 한다. “망태기 네 보따리 채우면 하루 3만원 받는다”는 말도 덧붙인다. 하동은 야생차밭만 500㏊에 이른다. 한때 보성녹차와 자존심 경쟁을 벌였지만 하동이 그 순수성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사진 속처럼 잘 정돈된 녹차밭을 보려면 보성으로 가야하지만 이빠진 빗처럼 투박한 야생 녹차를 음미하려면 하동 화개면 일대가 적소다. 화개면 쌍계사 주변은 야생차 시배지로 알려졌고 가장 오래된 차나무도 있다. 지리산 자락의 이슬을 먹고 자란 이곳 야생녹차는 진하지 않으나 은은한 향을 뿜어낸다. 녹차는 잎이 자란 정도에 따라 우전,세작,중작,대작으로 나뉜다. 우전은 곡우(4월20일) 이전에 가장 먼저 돋아난 새순으로 만든 최고급차. 곡우 이후 어린 찻잎으로 만든 차는 세작이다. 7대째 차밭을 일구고 있는 도심다원의 오시영씨는 “우전이 귀하지만 맛과 향은 세작이 가장 뛰어나다”고 말한다. 5월 중순이면 세작에서 중작으로 넘어갈 때. 이곳 차는 찌지 않고 일일이 덖어서(물을 넣지 않고 타지 않을 정도로 볶아서 익힘) 내놓아 맛이 담백하고 구수하다. 요즘 녹차는 별곳에 다 쓰인다. 냉면,장아찌로도 먹는다. 녹차 말리던 한 아줌마는 “여수,삼천포 등 인근 어시장에서 녹차찌꺼기를 가져간다”고 말한다. 생선을 말리기 전 녹차 찌꺼기를 섞은 물에 담그면 냄새도 사라지고 파리도 안 꾄다고 한다. 김수로왕의 칠왕자가 성불했다는 칠불사,조영남 아저씨가 불렀던 ‘화개장터’. 둘러둘러 지리산 자락을 벗어나 섬진강 강바람을 맞는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배경이었던 악양면 평사리를 스쳐 지난다. 악양은 “거지가 한 바퀴 돌고가면 겨울 먹고도 사흘 먹을 게 남았다”는 풍족한 마을이었다. 사진작가들이 즐겨 찍는다는 노송 두 그루의 분위기가 그럴싸하다. 섬진강 하류로 접어들면 또 한차례 허리 숙인 여인들을 만난다. 재첩(다슬기의 일종) 잡는 아낙네들이다. 섬진강 재첩은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되는 이곳 하동 송림 부근에서 많이 잡힌다. 5월을 기점으로 제맛을 낸다. 하동 토박이 강태진씨는 “20∼30년 전에는 엄지손톱만한 재첩을 질리도록 먹었다. 강바닥을 긁어내면 다음날이면 또 까맣게 재첩이 올라왔다”고 회고한다. 모래 많고 물 맑고 염도 적절한 섬진강 하류는 재첩이 그득그득 잡혔다. 하지만 토종 하동재첩은 요즘 귀한 음식이 됐다. 섬진강자락 난공사로 물길이 변했고 식당들도 무분별하게 생겨났다. 최근에는 외부에서 조달된 재첩이 식탁에 오르기도 하는 형편이다. 5월 하동여행 때 형제봉을 그냥 스쳐지나면 곤란하다. 패러글라이딩 대회 구경이 공짜. 눈썰미 좋은 이라면 형제봉에서 지리산 종주코스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는 점에 감탄할 것이다. 천왕봉,삼도봉,반야봉,노고단까지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형제봉 정상은 여유롭고 부드럽다. 능선너머 철쭉도 한창이고 발아래 악양과 섬진강도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날개 달고 껑충 뛰고픈 충동에 빠진다.야생차,재첩 가득한 지리산 섬진강 19번 국도는 2차선에서 4차선으로 변경하는 것을 놓고 한창 설전 중이다. ‘지역발전을 위해’,‘환경보존을 위해’, 곳곳에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아는 듯 모르는 듯 섬진강은 석양을 배경으로 유유히 흐른다. 재첩은 여전히 구수하고 야생녹차의 은은한 향기 역시 변함이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