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사 은행나무 「1100년」 진실!
용문사 은행나무 「1100년」 진실!
  • 박현일
  • 승인 2004.03.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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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마의태자설(1069년) -동절기 식재 설득력 약해ㆍ의상대사설(1334년) -대경대사 창건설과 상충ㆍ원효대사설(1355년) -출가 3년만에 창건 모순ㆍ도선대서설(1112년 )-용문사 중창, 가능성 높아양평의 상징, 용문산 은행나무에 대해 군민들은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을까? 첫째, 천연기념물 30호인 용문사 은행나무의 키는 최근 문화재청의 실측결과 67m로 확인됐다. 1962년 측정한 60m보다 무려 7m 성장한 것이다. 가슴높이 둘레는 14m, 가지는 남북 27.1, 동서로 28.4m 정도 퍼져 있다. 키는 동양 최대다. 둘째, 은행나무 나이는 얼마나 됐을까. 대략 1100년이라고 알려진 은행나무 수령을 추측할수 있는 기원은 대략 4가지가 있다. 4가지설에 의거, 은행나무 수령을 유추해 본다. 1. 마의 태자설 -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 태자. 후백제 견훤과 고려 왕건의 세력이 강해져서 나라를 보전할수 없게 되자 935년(경순왕 9) 경순왕은 천년사직을 김봉휴를 시켜 국서를 보내 고려에 항복하였다. 이에 마의 태자는 개골산(금강산의 겨울 명칭)으로 들어가 초식으로 연명, 베옷을 입고 일생을 보냈다 한다. 마의 태자가 개골산으로 가는 도중 용문산에 심은 나무가 은행나무라는 설이다. 이설에 의하면 올해로 은행나무는 1069년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개골산’이란 명칭으로 보아 마의 태자가 겨울의 길목에서 양평을 거쳤을 가능성이 높아 식수철이 아닌 은행나무가 잘 자랐을까 의문이다. 2. 의상대사 설 -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꽂아 놓은 지팡이가 자란 것이라는 설이다. 의상대사는 625년 출생, 702년 입적(진평왕 47∼성덕왕1)했다. 의상대사의 마지막 생존년도를 기준으로 하면 용문산 은행나무는 1302년이 된다. 한국 화엄종의 시조인 의상은 19세기에 경주 황복사에서 출가, 650년(진덕왕 4)에 원효와 함께 당나라로 가던중 난을 당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귀국하였다가 661년(문무왕 1)에 다시 중국에 들어가 양주에 머물렀다. 9년 후인 670년 귀국하여 강원도 낙산사 관음굴에서 머물렀다. 676년 이후에는 왕명을 받아 주로 경상ㆍ충청ㆍ전라도에 머물며 화엄 10찰을 짓고 강술에 힘썼다. 양평을 거쳐 갔다면 낙산사에 머물렀던 670년에서 676년 사이일 것이다. 이렇게 추정하면 용문사 은행나무는 1328∼1334년이 된다. 3. 원효대사 설 - 용문사 창건설에서 비롯된 것이다. 617년 출생, 686년(진평왕 39∼신문왕 6)에 입적한 원효대사는 29세때인 646년에 출가, 2년후인 648년(진덕여왕 2년) 황룡사에서 수도에 정진했으며, 34세때인 650년 의상대사와 당나라로 떠났으나 중도 귀환, 10년뒤인 660년 다시 떠났다가 해골에 괸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어 되돌아 왔다. 이후 태종무열왕때 요석공주와 설총을 나았다. 원효는 소성거사ㆍ복성거사라 칭할 만큼 속인행세를 하며 화엄사상을 기초로 민중불교를 전파했다. 이후 총 100여부 240권의 불교이론을 책으로 편찬했다. 그런데 원효가 출가 3년만인 33세 나이로 649(진덕여왕 3년)에 양평에 와 용문사를 창건했다는 설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당시 원효는 경주에 머물면서 황룡사에서 수행중이었으며, 의상대사와 함께 당나라로 수행을 떠나기 1년 전이다. 따라서 원효대사 은행나무 설은 설득력이 약하다. 만약원효가 은행나무를 심었다면 1355년이 된다. 특히 또다른 창건설인 913년(신덕왕 2년)에 대경대사가 용문사를 창건했을 경우 창건 240여년전인 670∼676년 사이 의상대사가 빈땅인 용문사터에 들려 은행나무를 심었을리는 만무하다. 다만 대경대사 창건설이 확실하다면 용문사를 짓기 시작한지 22년 후인 마의태자 은행나무 설이 설득력을 얻는다. 불사초기에 용문사에 들른 마의태자가 나라 잃은 슬픔을 1000년을 산다는 은행나무를 심으며 달랬을 수 있다. 4. 도선대사 설 - 용문사 창건설중 원효가 649년 창건, 도선대사가 중창했다는 설이 있다. 도선대사는 827년 출생, 898년(흥덕왕 2∼효공왕 2)에 입적했다. 도선대사는 풍수와 예언에 능통, 고려 건국을 예언한‘도선비기’가 요즘까지 회자되고 있다. 그런데 도선대사가 892년(진성여왕 6) 용문사를 크게 세웠다는 것이다. 서울 도봉산 중턱에 있는 도선사도 862년(경문왕 2)에 도선이 창건한 절이다. 도선대사는 산수의 순역을 점쳐, 신라말 엽 상당수 사찰을 개창하는데 힘썼다. 이를 미루어 볼때 도선대사가 중창당시 용문사에 은행나무를 심었을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은행나무는 최소한 1112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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