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면, 옛 선인들의 발자취 따라 “역사기행”
양동면, 옛 선인들의 발자취 따라 “역사기행”
  • 백운신문편집부
  • 승인 2005.10.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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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의병 추모비와 의병장묘 등 義鄕의 뿌리

 

 

  양동면은 이웃 지제면과 더불어 양평을 의향(義鄕)의 고장으로 자리잡게 한 지역이다. 대한민국 역사에 눈부시고 뚜렷하게 각인돼 있는, 의병(義兵)이 1893년 우리나라 최초로 봉기한 고장이다.


  양평의 인물이자 우리 민족의 스승인 화서 이항로 선생의 가르침에 힘입어 민족정기와 한민족 주체성을 수호하기 위하여 왜적과 맞서 순박한 농민들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바친 역사의 현장이다.  동쪽으로는 강원도 횡성과 원주가 닿아 있고 남쪽으로는 여주군이 접해 있다. 비룡산, 일당산에 둘러싸여 있고 매월천, 계정천, 석곡천, 단석천이 십자형으로 흐른다.  매월리, 쌍학리, 고송리 등 고색창연한 마을이름에서 물씬 풍겨지듯 양동면은 충절과 효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가족과 함께 호젓한 가을여행을 떠나는 사람이나 주위에 있는 관광지로 향하는 젊은이들이 옛 선인들의 발자취를 느끼기에 손색이 없다.

 

 


▲ 을미의병 추모비와 의병장묘  (양동면 단석리, 석곡리)


  양동면에서 배출한 의병 이춘영, 김백선, 안승우 등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의병의 최초 발생지가 이 곳임을 입증하는 자료가 속속 들어나던 1997년의 일이다. 두 마리 용을 양각한 옥개석을 갖춘 비로 후면에 당시 의병의 조직계보를 새겨놓았다.


  이춘영과 안승우는 양동면 석곡리 사람들이다. 이춘영은 1869년에, 안승우는 1864년에 태어났다. 이들이 27살과 31살이 되던 1895년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들에게 시해 당하자 의병을 일으켜 제천, 충주, 조령, 달천 등지에서 큰 공을 세웠다.


  평범한 묘처럼 상석과 비석 하나만 놓여 있지만 왕릉에서 느낄 수 없는 남다른 감회가 묻어나는 곳이다.

 


▲택풍당 (양동면 쌍학리)


  택풍당은 담으로 둘러 쌓인 편안하고 고즈넉한 정자이다.
  홍길동의 저자가 허균임을 기록한 유일한 문헌 ‘택당집’을 남긴 조선 인조시대의 문인이자 학자였던 이식(1584-1647)선생이 본디 주인이다.  호가 택당이었던 선생은 광해군 2년(1610)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대사성, 대제학을 거쳐 이조참판을 역임하였다.


  당대에 이름난 학자로서 많은 제자를 배출하였고, 특히 한문학에 정통하여 한문학 4대가의 한사람으로 손꼽힌다.


▲쌍학리 효열각 (양동면 단석리)


  을미의병 기념비와 나란히 세워져 있다. 이 곳 출신의 효자 방영환, 효부 전이란과 이정자 세사람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정각이다.


  이 건물은 양동유림을 중심으로 한 유도회 자체 기금으로 시작되어 정부의 지원을 받아 1973년 10월에 준공되었다. 수백년 세월 저편에 살았던 선인들의 효행을 마을사람 스스로의 힘으로 되살린 것이다.


  소박하고 단아한 정자이지만, 충효의 고장 양동면을 상징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 문의 : 양동면사무소  031) 770-3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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