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흙피리 체험
양평 흙피리 체험
  • 백운신문편집부
  • 승인 2005.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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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평에 자리한 ‘후두둑 흙피리 체험장’ 귀골마을(위). 도인처럼 보이는 ‘후두둑’ 아저씨의 재미난 강의(아래)도 듣고 직접 흙피리도 만들 수 있다.

 

 

  우중충한 회색빛 하늘, 끈적거리는 대기의 습도 등이 요새 장마철에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날씨 탓에 기분까지 개운하지 않은 일상. 여행을 떠나자니 예측할 수 없는 기상조건이 앞을 가로 막고 있다. 여러 날 움직이기 어려울 때 기분전환을 위해 가족이 한번쯤 찾아갈 만한 장소가 없을까. 경기도 양평에 있는 ‘후두둑 흙피리 체험장’은 어떨까. 야외에 나서 상쾌한 공기도 마시고 한적한 시골집에 들러 흙피리를 만들다보면 하루가 절로 즐거워진다.

 

 7월 초 후두둑 흙피리 체험장(경기도 양평군 지제면 곡수1리)이 있는 귀골마을을 찾아가는 날은 회색빛 하늘 탓인지 기분조차 개운치 않았다. 그저 평범하게 논밭이 펼쳐지는 양평의 시골 마을. 날로 푸르게 변하는 벼잎의 생생함을 확인하면서도 머리는 지루한 장마 탓인지 멍하다.

 

마을 안쪽에 수문장처럼 버티고 서 있는 세 그루의 느티나무. 그쪽에 주차를 하고 걸어 들어오라는 주인장의 말을 상기하고 차를 세웠다. 가구 수가 많지 않은 평범한 시골마을. 흙피리 체험장이 없다면 여행객들은 눈길 하나 두지 않을 평범한 촌락이다. 그런데 마을에 들어서도 정작 흙피리 체험장에 대한 팻말은 없다.

 

비에 젖어서인지 색깔이 많이 바랜 초가집 한 채. 귀를 기울이니 수업이 시작된 듯 강사의 말이 담장 너머로 새어나오고 있다. 살림채인지, 강의실인지 구분이 안되는 실내에는 옹기종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강의를 듣고 있다.

 

편한 복장에 길게 기른 머리를 뒤로 묶은 채, 더워 보이는 검은색 모직 모자를 쓰고 검정고무신을 신은 주인장. 치장되지 않은 집처럼 어수선해 보이지만 이런 일에 경험이 많은지 입담은 구수하다. 아이들은 눈을 반짝반짝거리면서 강의에 몰입을 한다.

 

주인장이 테이블 앞에 미리 만들어 놓은 오카리나, 꾸룩, 훈 등 자그마한 흙피리를 손에 들고 설명을 한다. 흙피리의 대명사로 불리는 ‘오카리나’는 이탈리아어로 ‘작은 거위’라는 뜻인데, 리코더처럼 취구와 혀 위치가 고정되어 청아하고 깨끗하며 정확한 음을 만들어 준단다. ‘훈’은 단소나 대금의 취구와 흡사한데 부는 사람의 입 모양에 따라 바람소리, 꺾는 소리, 거친 소리, 청한 소리 등을 자유롭게 낼 수가 있다. 흙피리 중에서 가장 큰 편. ‘꾸룩이’(방구피리)는 새를 부르고 개를 부르고 애인을 부르는 신호음처럼 들리는데 마치 휘파람 소리와 같다.

 

오카리나’와 ‘꾸룩이’로 불리는 흙피리의 표면을 숟가락으로 반질반질 윤을 내는 체험객들. 송곳으로 이름을 새겨 넣으면 준비 끝(오른쪽위). 그 다음은 모닥불에 철판을 얹고 그 위에서 흙피리를 연기로 살살 굽는다.

이름도 모르는, 그래서 그저 ‘후두둑’으로 통하는 주인장은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한 시간여 정도 가볍게 강의를 한다. 매스컴에 소개될 필요 없다는 그는 말을 많이 아꼈다. 묻는 말에 대꾸하는 것에도 인색한 그지만 아이들에게는 친절하면서도 재미있는 단어를 뒤섞어가며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강의가 끝나면 미리 형태를 만들어 놓은 오카리나와 꾸룩이를 나눠주면서 숟가락을 하나씩 건네주는 것이 전부다. 보편적으로 체험객들에겐 ‘오카리나’를 만들게 하고 아주 어린아이들에겐 ‘꾸룩이’를 집어준다.

 

저마다 손에 집어든 ‘예비 흙피리’의 모양은 각양각색이다. 물고기, 각종 산새, 개, 고라니, 오리, 고니, 토끼, 사슴 모습 등등. 이것을 다듬고 손질하고 구워내 흙피리가 완성되는 것이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열심히 숟가락으로 흙피리 덩어리의 표면을 문지르기 시작한다. 문지르기를 하는 것은 흙을 빚으면서 생기는 미세한 구멍들을 메워주고, 촉감을 부드럽게 하기 위한 것이란다. 열심히 문지르면 반질반질 윤기가 나는데, 다 된 사람들이 날카로운 송곳으로 자신의 이름을 새기면 1차 작업은 끝난다.

 

주인장은 이를 모두 모아 입구와 구멍을 다듬어 구워내서도 소리가 잘 날 수 있도록 손을 본다. 그런 후에는 뒤켠 마당에 피워놓은 모닥불 위에 철판을 올려놓고 그 위에 ‘작품’을 얹는다. 가마도 아닌 곳에서 과연 작품이 완성될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 불이 활활 지펴지지도 않는다. 매캐한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나는데 1천℃의 고온에서 구워지는 보편적인 도자기의 일반 상식이 완전히 깨어지는 순간이다.

 

연기만으로 구워내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흙은 갑작스럽게 불을 때면 표면이 굳어져 속 공기가 열을 받아 팽창하기 때문에 숨어 있는 공기의 피난처를 마련해 주고 조심조심 나가라고 하는 작업이란다. 연기를 쐬어 주며 조심스럽게 진행하면서 불의 온도가 4백℃ 정도 되면 물은 95%가 빠져나가고 ‘시껌덩이’가 흙에 붙기 시작한다.

 

천천히 불기운에 구워지는 시간은 2시간 정도. 그러는 동안 아이들은 고기도 구워 먹고 점심도 먹으면서 산에 올라가 마른 솔잎을 주워 솥단지에 모은다. 막바지에 불꽃을 가해 빨갛게 달아오른 흙피리를 솔잎이 든 차가운 솥단지 안에 넣으면 갑작스런 경직이 일어나는데, 이때 솔잎(낙엽)이 타면서 나온 연기가 흙피리 안으로 들어갔다가 갇히게 되면서 낙엽의 그윽한 향기가 흙 속에 남게 된다.

연기를 씌우는 작업이 끝나면 아이들을 모아 입안 가득히 물을 머금어 소방수 놀이를 장난처럼 하면서 뜨거운 흙피리를 식히는 마지막 공정을 하게 된다.

 

그저 장난처럼 ‘누가 누가 잘하나’ 식으로 솔잎 모으기, 물 멀리 품어내기를 유연하게 해내는 후두둑 주인장.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루가 흘러가면 멋진 흙피리가 완성된다. 자기가 직접 만든 피리를 손에 들고 연주경연을 펼치면서 하루 체험을 마감한다. 비가 오는 날에는 실내에서만 하고, 굽는 일도 쓰레기 소각장처럼 얼키설키 만들어 놓은 가마(?)에서 이뤄진다.

그래도 운치 있는 초가집 사이로 아름다운 망초 꽃이 피어나 해사하게 웃고, 자그마한 연못에는 보기가 쉽지 않은 노랑 어리연꽃이 잠시 눅눅한 여름 더위를 잊으라는 듯 청초하게 피어오른다. 그 사이로 주인장이 부는 흙피리 소리가 꿈틀꿈틀 춤을 춘다. 축축한 공기 속으로 퍼지는 운치 있는 피리 소리는 장마에 녹진하게 내려앉았던 마음을 뽀송뽀송하게 말려 준다.

 

여행 안내 ▲후두둑 흙피리 체험장 (031-773-2042, 018-202-8806, www.hrgpiri.co.kr) 체험비: 1인당 1만2천원(30명 기준 1만원), 전화나 인터넷으로 필히 예약.

 

▲가는 길: 서울-양평간 6번 국도를 이용해 양평읍내로 들어서면 된다. 양평읍내를 거쳐 여주로 난 37번 국도 이용. 여주 이포 막국수촌 4거리를 만나면 용문이라는 팻말을 따라 좌회전. 이내 곡수라는 마을을 만나게 되는데 이곳에서 여주쪽으로 들어오면 왼편에 곡수1리(골말마을)라는 팻말을 만난다.

 

▲먹거리: 흙피리를 만들 때 피운 숯불로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다. 커다란 무쇠 솥뚜껑이 준비되어 있으니 필요한 재료는 전부 씻어서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체험장에서 가까운 곡수에는 김치찌개를 잘하는 식당이 있으며 , 잠시 차를 타고 나가 이포 막국수촌을 이용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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