砥平 鄕校 마을
砥平 鄕校 마을
  • 박경희
  • 승인 2001.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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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전통을 고수라도 하듯, 마을 전체가 조용한 지제면 지평리 향교 마을을 지난 주말에 다녀왔다. 마을 입구엔, 세 그루의 정자나무가 동무하듯 다정히 서 있다. 나무로 만든 팔각정 아래 논에선 누런 벼들이 출렁이고 있고, 지나가는 나그네들의 발길을 잡는 야트막한 의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향교를 올라가기 위해 홍살문을 들어선다. 과꽃이 나를 반겨 준다. 큰 밤나무에선 밤들이 익어가고 있다. 나무가 휘어질 듯 누런 은행이 많이도 달렸다. 봉미산에 서면 지평면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 그 끝자락에 향교마을이 있다. 봉미산엔 예전에 낫이나 칼을 가는데 쓰이는 숫돌이 많이 생산되었다. 그래서 이 고을을 숫돌 지(砥)자와 평평할 평(平)자를 써서 지평리라고 불렀다한다. 지제면 지평리 소재지에서 삼거리를 지나 좌회전하면 보병 5사단이 57년 7월 건립한 ‘지평지구전투전적비’가 있다. 이곳에는 을미의병기념비도 길가에 나란히 세워져 있다. 여기서 자동차로 1분 정도 더 가면 ‘지평향교’가 나온다. 지평향교는 조선 제 21대 영조 49년 (1773)에 건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향교 내부에 있는 명륜당의 내삼문과 대성전의 석축은 고식을 갖춘 것으로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공자 외 24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음력 2월 초정일과 8월 초정일 두 차례 제사를 올리고 있다. 이때 지제면 유지들이 참석한다. 지평향교는 평소에는 개방하지 않는다. 관리인에게 문을 열어 달라고 했다. 명륜당 앞뜰로 들어서 보니 마당이 꽤 넓다. 잠시 적막이 감돈다. 경내는 알뜰한 안주인의 손길이 묻어있는 일반 가정집처럼 깨끗이 정돈되어 있다. 마당에 고들빼기, 질경이 등이 찾아 주는 사람이 없어 심심하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빨갛게 익은 대추가 나를 유혹한다. 잘 익은 대추 한 알을 따서 깨물어 본다. 아삭아삭 어린 시절 먹던 그 맛이다. 대성전 뒤쪽에는 꽤 큰 향나무가 있다. 푸근한 할머니의 모습처럼 평화롭게 서 있는 향나무를 보는 순간, 이 마을이 고향인 친구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향교에는 오래된 향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그 밑에 얕은 웅덩이가 있었어. 우린 그 웅덩이에 들어 가 고구마도 먹고, 재밌는 이야기도 하면서 해지는 줄 모르고 놀았단다. 향교 안에 들어 와 노는 줄 알면 동네 어르신들이 노발대발하니까 조용히 노느라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몰라. 그런데 맘껏 소리 지르며 놀 때보다 더 스릴 있고 재밌었지.” 가을 햇살을 받으며, 향나무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하늘 천 따지...” 유생들의 글읽는 소리가 들리는 듯 싶다. 그런데 뭔가 느낌이 이상해 고개를 들어 보니, 돌담에서 붉은 빛을 띈 큰 뱀이 특유의 샥~ 소리를 내며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린 시절 뒷동산에서 수없이 만났던 뱀이 날 마중 나온 것 같아 반가웠다. 요즘은 농약 때문에 시골에도 뱀이 없다는 소릴 들었는데...... 뜻하지 않은 곳에서 만난 뱀은 무섭기는커녕 친근감마저 들었다. 잃어버린 유물단지를 찾은 것처럼 신기롭기까지 했다. 그만큼 내가 고향의 정취에 목말라 있었나보다. 향교 답사를 마치고 내려오다 빨간 고추가 가득 널린 멍석 위에 앉아 있는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정겨웠다. 저 할머니도 도회지에 나간 자식들에게 진짜 태양초를 먹이기 위해, 쪼그리고 앉아 고추를 말리는 것이리라. 향교마을에서 5분 정도 가면 광탄이 나온다. 이 고장의 명물 '고바우 설렁탕' 집에 들어 가 정갈한 김치와 함께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니,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있을까? 절로 감탄이 솟는다. 여름이면, 향교 마을에 들어 가 옛 우리 조상들의 정취에 흠뻑 젖어 본 다음, 광탄 다리 밑에 돗자리 펴고 다슬기 잡는 재미 또한 크다. 산과 물, 유적지 이 모두를 갖춘 '지평 향교마을'은 언제 보아도 정겹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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