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주년 광복절 맞아 국가보훈처(國家報勳處)환골탈태 거듭나 친일적폐청산 앞장서야
72주년 광복절 맞아 국가보훈처(國家報勳處)환골탈태 거듭나 친일적폐청산 앞장서야
  • 양평백운신문
  • 승인 2017.07.23 11:4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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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國家報勳處)는 민족과 역사 앞에 바로서고 거듭나야 위상이 바로 선다.
 

  국가보훈처의 중요업무는 국가보훈대상자의 예우 및 보상, 보훈문화 창달 및 국민 애국심 고취를 담당하는 국무총리 소속의 중앙행정기관으로 국가 보훈 대상자에 대한 보훈급여금 지급, 교육, 취업, 의료지원 등 예우와 보상, 제대군인을 위한 보상 및 지원, 국가를 위해 희생∙공헌한 분의 명예선양 및 국민 나라사랑정신 함양, UN참전국 등과의 국제 교류∙협력 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실천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보호처가 방대한 국가예산을 지원받고 있지만 제대로 예산이 나라위해 희생하신 분들에게 보상연금으로 충분하게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적지 않은 예산은 국가보훈처 산하관리에 자체소비에 사용되고 국가보훈처 공직자들은 타 행정부처의 공직자들보다 책임감이 부족한 현실이며 직무자체도 편하게 근무하는 현실이다. 아직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받치고 희생하신 분들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아 그 후손들이 수 십 년째 선조의 항일독립운동의 명예를 찾고 있지만 국가보훈처의 무관심과 철 밥통 관행과 구태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가슴을 치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국가보훈처가 나서 말이나 구호로는 찾고 있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제대로 찾지도 않고 그 후손들에게만 맡겨놓고 있는 현실이며 공훈심사를 제기하며 거증자료부족으로 심사에서 탈락이나 기각이 대부분이며 후손들에게 부족한 입증자료를 찾아오라고 하는 앵무새답변이 현실이다. 지난 5.18사태의 국가유공자 인정심사에 인후증명이 사용된바 있어도 항일독립유공자 심사에서는 적용할 수 없다고 하며 복지부동인 상태는 연전하기 때문이다. 이래서 국가보훈처가 민족과 역사 앞에 바로 설수 있겠는가?

  일제강점기 독립 운동을 하다 형무소에서 모진 고문으로 옥사했지만 기록이 소실됐다며 정부가 독립유공자로 인정해 주지 않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일제강점기시대 형무소 수형인 기록을 지난 1980년 12월 실수로 모두 불살라버렸던 정부가 이제 와서 독립운동으로 수감됐다는 걸 증명할 문서를 가져와야 독립유공자로 인정해주겠다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지난 40년 선조의 항일독립운동 관련 자료발굴에 나서며 공훈심사 6차례나 제기해도 거증자료부족이 기각 주 사유이다,

  정부는 해방이후 친일적폐청산을 하지 못하고 바로 정권을 수립하여 일제강점기 반민족행위와 친일행위를 일삼든 자들을 인적활용하면서 친일청산은 물 건너가고 그들이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서 자신들의 부끄러운 친일행위 자료를 인위적이거나 정부주관으로 폐기 소각하는 만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때문에 일제강점기 일제에 항거하다 경성형무소에서 옥사한 독립투사 정용선(鄭溶璿, 1883년 ~ 1928년)선생의 증손자 정병기(60)씨는 해마다 3.1절이면 가슴이 답답하다 못해 억장이 무너져 내린다.

  여기 독립운동가 후손이 40년째 고군분투하며 눈물을 흘린다. 1980년 12월 관련기록 전소 '증거 없다'는 이유로 독립 유공자 공훈심사에서 번번이 누락 탈락되고 있다. 해방이후 진난 정권들이 자신들의 친일행위를 없애기 위해 인위적인 페기소각행위가 자행되었는데 그것은 초기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 그리고 전두환 정권에 의해 역사적 테러인 만행이 자행되었던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 서울 마포에 있던 일제강점기 악명이 높던 마포 경성형무소가 사라졌다는 것은 이해 할 수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역사의 현장은 민족의 독립을 위해 모진 고분과 탄압 그리고 강제노역에도 일제에 굴하지 않고 독립의지를 지키고 절개를 보여준 애국의 현장이다. 그러나 국민들 대부분이 잊거나 모르고 있는 현실이다. 반드시 재조명되어야 할 역사의 현장이라고 본다. 여기서 생애 일제시대 경성형무소(현 서부지방법원. 검찰청)에서 옥사한 독립투사. 결정적인 증거로 “당시 항일 활동가를 가두던 경성형무소에서 장기복역하다 숨졌다는 것 자체가 증조부가 독립운동에 헌신하다 희생됐는데도 인정받지 못한 채 잊혀지고 잃어버린 빛이 바랜 애국으로 묻히는 현실이 안타깝고 비통하다.

  정부는 일제강점기 항일독립투사들의 무덤이 되었던 역사의 현장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기 위하여 마포 경성형무소 역사관건립을 정부차원에서 복원해야 하며 이제라도 진정한 친일적폐청산을 통하여 왜곡된 민족역사를 바로잡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당시 악명이 높았던 마포 경성형무소는 한번 걸어서 투옥되면 모진 고문과 탄압 그리고 강제노역과 굶주림으로 죽어야만 나오는데 시신도 가족의 품으로 돌려주지 않았던 만행을 저지른 역사의 현장으로 악명이 높았던 애국현장인 곳이다, 정부는 일제강점기 항일독립투쟁 옥사 독립유공자 발굴 특단 내려야 하며 이곳에서 숨을 거두신 분들에 대한 명에를 찾아 주어야 할 것이며 이일은 바로 정부가 해야 할 역사적사명이 아닌가 싶다.

  당시 독립운동가 가족이란 이유로 모진 박해에 시달렸던 자손들은 집안은 풍비박산 나고 뿔뿔히 흩어지고 말았으며 해방이후 상당수가 배움의 길에서 멀어졌고, 오늘날 가난 때문에 먹고사는 일에 매달려야 하는 형편이다. 이렇다 보니 대계는 선조의 명예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여유가 없다. 일부 자손이 관련 자료 발굴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많은 자료가 소실 또는 소각처리 돼 찾기가 매우 어렵다. 독립운동 관련 문서는 역사적 문서로 반영구적인 보존서류임에도 그 중요성이 인식되지 못하고 지난 자신들의 부끄러운 친일흔적을 지우려는 정권들이 폐기 소각한 현실이 안타깝고 개탄스럽다.

  진정한 광복의 의미 찾기 위해서는 미발굴독립유공자 문제해결과 친일적폐청산 우선돼야 한다. 자손이 자력으로 찾을 수 있는 자료는 그저 전해 오는 말이거나 호적에 형무소 수형 기록이 있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해당 부처인 국가보훈처에서는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수형인 명부나 당시의 재판 서류 등 무리한 상세자료를 요구하고 있다. 이제는 정부가 독립유공자 가족이 아니라는 자료를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 반문하고 싶은 심정이다. 지난동안 국가보훈처는 제대로 일을 하지 않고 수수방관해 왔다고 본다. 국민의 눈높이나 언로보도 자체를 부인하고 틀에 박힌 행정인 탁상행정만 고수하고 외면하면서 후손들을 눈물을 닦아주지 않았다고 본다.

  8.15광복의 기쁨과 3·1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진정한 민족의 광복절이 되려면 친일역사 청산과 독립유공자 발굴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정부가 앞장서 국내외에 흩어진 관련 자료 발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 대통령 직속의 특별위원회 설치를 고려해 보는 게 어떤가 한다. 참여정부하의 과거사진상규명특별위원회 등과 같이 대통령 직속의 기관을 설치해 좌우익을 떠나서 일제에 항거했던 유공자들에 대한 발굴을 적극 지원하기 위해서다. 이는 역사적 현실을 감안한다면 당연지사라고 본다. 정부는 정부다운 조치와 배려가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나 미흡하고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끝났다고 본다. 이제는 국가보훈처가 중심이 되어 친일적폐청산을 물론 지난날 잘못된 과가를 청산하고 철저한 반성과 참회를 통하여 환골탈태 거듭나 굴곡진 민족사를 바로잡고 기울어진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계기가 되고 진정한 광복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느끼게 되기를 아울러 바라고 소망한다.

 글쓴이/정병기< 보훈가족. 미발굴독립유공자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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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비행사 임도현 후손 2017-09-10 19:24:04
국가보훈처의 적폐---
그들의 無能한 것인지-
그들의 無能한 척 하는 것인지-
그들의 김정운 외삼춘에게는 xxxx 애국장 추서---
항일비행사 임도현에게는 정신병자 취급---
항일비행사 임도현 후손들의 국가보훈처 노예인가---

정병기 2017-09-03 08:33:52
척곡교회
경북 봉화군 법전면 척곡리 척곡교회 민족교회로 봉화지역 항일독립운동 군자금운동의 중심역활을 한 이교회에서 군자금 마련 만주 용정으로 보내 독립군을도왔다. 정용선 선생도 이곳에서 활동하시다 체포 악명이 높던 마포 경성형무소에서 옥사하셨습니다. 그러나 거증자료 부족이라고 서훈을 인정하지 않아 후손들이 40년을 노력하고 있습니다.
https://www.facebook.com/byounggi.jeong.5/videos/13369020297417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