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산지구 전투 전적비에 서린 호국영웅의 혼
용문산지구 전투 전적비에 서린 호국영웅의 혼
  • 양평백운신문
  • 승인 2015.05.21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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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정부보훈지청 선양담당 오제호
용문산지구 전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생소할 것이다. 필자 또한 보훈선양의 업무 담당하고 나서야 용문산지구 전투가 6․25전쟁의 주요 격전 중 하나임을 알았다. 때문에 이 전투의 과정에서 활약한 뛰어난 개인의 행적과, 이러한 호국영웅의 활약으로 승전고를 울릴 수 있었던 용문산지구 전투의 국가수호사상 의의, 그리고 이러한 전적을 기리고자 세워진 전적비에 대해서도 일반에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이에 아래에서는 본 전투의 대강과 그 속에서의 호국영웅의 활약 및 전후 건립된 전적비를 간단히 소개해 본다.

용문산지구 전투는 1951년 5월 17일부터 5월 28일까지 경기도 양평군 용문산 일대에서 국군 제6사단이 중공 제63군 예하 3개 사단의 침공을 격퇴한 전투이다. 6․25전쟁 최대의 패전으로 기록된 1951년 5월의 인제군 현리 전투를 비롯하여 사창리 전투 등으로 수세에 놓인 국군에 있어 본 전투의 승전은 제2차 춘계 대공세로 국군을 압박했던 중공군의 예봉을 꺾어서 국군의 반격이 가능토록 했다.

이 전투로 중공군은 3개 사단 10만여 병력을 잃었고 남하의 동력을 상실했다. 이로써 본 전투는 3년 1개월간의 전쟁에서 기록된 가장 큰 전적으로써 6․25전쟁의 기념비적인 격전으로 남게 되었다.

국군 제6사단의 수 배에 이르는 수효의 중공 63군을 맞이하여 기념비적 전적을 남긴 데에는, 상기한 전세의 절대열위를 극복할 뛰어난 개인의 특별한 활약상이 필수적이었다. 이에 김종덕 중위, 최병창 중위, 손기섭 하사 등이 뛰어난 활약으로 충무, 화랑 등의 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특히 노승호 하사와 이천길 상사의 활약은 특기할만한데, 이들은 중공군에 고립된 제3대대와 본대의 교신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적진을 돌파하여 전멸의 위기에 놓인 제3대대를 구원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렇게 구출된 제3대대가 이후 아군의 승리에 주역이 됨으로써 이들의 활약은 더욱 가치 있게 되었고, 2014년 2월 국가보훈처 선정 ‘이달의 전쟁영웅’이라는 명예로운 호칭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처럼 용문산지구 전투는 6․25 전쟁사상 중대한 격전으로서 그 과정에서 상기한 호국영웅들이 보인 특별한 활약상은 후세에 널리 전해져 칭송받아 마땅하다. 이에 1957년 7월 15일 육군 제7사단은 이러한 용문산 전투의 전모를 후대에 길이 전하기 위해 본 전투의 중심지였던 양평군 용문면에 ‘용문산지구 전투 전적비’를 세웠고, 이는 국가수호에의 연관성 및 상징성이 인정되어 2002년 10월 9일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로 등록되었다.

이로써 6․25전쟁 최대의 성과를 낸 용문산지구 전투란 명칭과 그 과정에서 영웅적 활약으로 국가를 수호해낸 수인의 전쟁영웅 이름이 세상에 길이 남겨지게 된 것이다.

용문산지구 전투와 그에서 활약한 전쟁영웅은 역사의 기록과 상기한 현충시설로서 세상에 ‘길이’ 알려지게 되었지만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다. 앞서 언급했듯이 용문산지구 전투 자체가 국민들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그 전투의 영웅과 그를 기념하기 위한 현충시설을 국민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국가보훈처 선양 담당자의 다소 무리한 희망인 것이 현실이다.

현실적으로 용문산지구 전투의 작은 것부터 차근차근 알아가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6․25전쟁 최대의 승리 중 하나인 용문산지구 전투란 명칭과 그 과정에서 뛰어난 활약상을 보인 호국영웅들의 이름에 한 번씩 관심을 가져보는 것이 우선이다. 더 나아가 용문산지구 전투 64주기를 맞이하는 오는 5월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광탄리 175-8에 위치한 용문산지구 전투 전적비를 찾아 그에 서린 호국영웅의 혼을 느껴보는 일은 호국영웅의 후예로서 좀 더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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