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 노동, 한국 사회의 ‘프레카리아트’는 누구인가?
불안정 노동, 한국 사회의 ‘프레카리아트’는 누구인가?
  • 양평백운신문
  • 승인 2015.03.18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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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승호(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학 교수)
프레카리아트(precariat)는 ‘불안정한’(precarious)과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를 합성한 용어로 불안정한 고용과 노동 상황에 놓인 파견·용역 등 비정규직, 실업자, 노숙인 등을 총칭한다. 불안정한 프롤레타리아트(무산계급)라는 뜻인데, 이들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 등장한 신노동자 계층이다. 비정규직의 대다수는 불안정 노동에 노출되어 있다. 그래서 비정규직을 불안정한 노동자 계급이라는 의미에서 프레카리아트라고 부른다. 하지만 비정규직만을 프레카리아트로 완전하게 동일시하기는 어렵다. 우선 비정규직의 삶을 한번 살펴보자.

불안정 노동: 비정규직

<한겨레 21> 3월 16일자는 비정규직의 불안정한 삶을 적나라하게 재조명했다. 기사에 인용된 사례를 보면, 조사된 비정규직 중에서 돈이 없어 공과금을 납부하지 못한 경험이 있는 경우는 40%에 달했고, 자녀의 교육비를 주지 못한 적이 있거나, 가족이 병원에 갈 수 없었던 경험이 있는 경우, 그리고 가족 중에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이 있는 경우는 각각 22%, 20%, 30%였다. 이들 문항을 포함해서 7개 항목의 빈곤 경험을 물었을 때, 빈곤경험이 전혀 없다는 응답 비율은 39%에 불과했고, 1개 이상의 중첩적 빈곤을 경험한 비정규직의 비율은 60%에 육박했다.

<한겨레 21>은 비정규직의 세대 간 대물림도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부모가 비정규직인 경우 자녀도 비정규직을 경험하고 있는 경우가 78%에 달했다. 그리고 첫 직장이 간접고용이면 이후에도 간접고용에 머물러있을 가능성은 83%였다. 그야말로 불안정성이 세습되고, 일상화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제 비정규직은 유동적인 고용형태의 하나가 아니라 계급으로 고착화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안정 노동: 프레카리아트 다시보기

하지만 비정규직이라는 개념만으로 이 시대의 불안정 노동을 설명하기는 역부족이다. 비정규직이 불안정한 노동을 대표한다고 할 수는 있지만, 정규직이라고 하더라도 노동의 불안정성에 노출되어 있는 임금근로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고용형태 중심으로만 파악해왔던 불안정성의 개념으로는 한국 사회의 프레카리아트가 누구인지를 명확히 밝혀내기가 어렵다. 따라서 고용형태 이외에도 불안정성의 속성을 다차원적으로 조명하여 프레카리아트를 드러낼 필요가 있다.

백승호(2014), 백승호와 이승윤(2014)1) 은 한국노동패널 자료를 활용하여 임금근로자들의 불안정 노동을 고용형태뿐만 아니라 임금수준, 사회보험 가입 여부를 사용하여 재규정했다. 그리고 이들 세 가지 모두에서 불안정한 경우부터 어느 한 가지도 불안정하지 않은 경우까지의 8개 조합을 만들어 불안정 노동을 분석했다.

분석결과를 보면, 2012년 현재 노동의 불안정성 수준은 2002년에 비해 조금 나아졌다. 이는 2002년 이후 사회보험의 적용범위가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용형태, 임금수준, 사회보험 가입 여부 등 세 가지 수준 모두에서 안정적인 집단의 비율은 2012년 현재 36%에 불과했다. 나머지 64%의 임금노동자들은 고용형태, 임금수준, 사회보험 중 최소한 한 가지에서 불안정성을 경험하고 있었다. 최소한 두 가지 기준 이상에서 불안정한 집단의 비율도 32%에 달했다. 세 가지 모두에서 불안정에 노출된 집단이 전형적인 불안정한 노동자 계급 즉, 프레카리아트라 할 수 있다.

불안정 노동: 프레카리아트의 삶

그렇다면 프레카리아트는 누구이고 어떤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가?

첫째, 프레카리아 의 인구학적 특성을 살펴보면, 여성이 64%에 달했다. 그리고 평균연령은 52세였고, 40대가 19%, 50대가 26%, 60대가 22%였다. 프레카리아트 중에 40-60세 사이인 임금근로자는 67%였다.

둘째, 직업군을 살펴보면, 프레카리아트들은 주로 저숙련 서비스 노동자들이었다. 60%가 가사 및 관련 보조원, 청소 및 세탁 종사자, 소매업체 판매 종사자, 음식서비스 관련 종사자들이었다. 특히 프레카리아트에 속하면서 저숙련 서비스 노동자인 경우 여성이 75%로 특히 많았다.

셋째, 프레카리아트들은 주된 일자리에서 월평균임금 77만 원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통계청 발표 2010년 평균 가구원 수는 2.7명이었다. 가구원 모두가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고 가정하면, 그 가구의 월평균임금은 208만 원에 불과하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체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2012년 기준 388만 원이었다. 2012년 3인 가구의 최저생계비는 122만 원 정도였다.

넷째, 프레카리아트들은 사회보험에서도 법적·실질적으로 배제2) 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회보험법의 직장가입 규정에서 일부 임금근로자들을 적용 제외로 규정하는 것을 법적 배제라 하고, 실제 사회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있는 경우를 실질적 배제라고 정의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보험 체계에서는 임금근로자가 직장가입에서 적용 제외될 경우 지역가입자로 가입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사회보험의 직장가입 적용 제외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법적 적용 제외 근로자의 대부분이 지역가입자로 가입하기 보다는 미가입하거나 미납자 상태로 남아있기 때문에 사회보험 직장가입 적용 제외를 사회보험 배제로 규정한다. 각각의 사회보험법에서 규정하는 적용 제외 대상자 범주는 서로 다르지만, 일용근로자나 1개월 미만의 기한을 정하여 사용되는 근로자,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월 60시간 미만의 단시간 근로자 등이 사회보험법에서 주로 직장가입 적용 제외자로 규정되어 있다.

임금근로자 전체의 사회보험 법적 배제 규모는 국민연금 14%, 건강보험 14%, 고용보험 11%, 산재보험 0.4%였다. 현재 사회보험이 1인 이상 전체 사업장을 포괄하고 있지만, 산재보험을 제외하면 여전히 법적으로 사회보험 직장가입자 자격을 얻는 것이 불가능한 임금근로자들이 많았다. 사회보험의 법적 배제 문제는 프레카리아트들에게서 더 심각했다. 프레카리아트들 중 사회보험 직장가입에서 적용 제외로 규정되고 있는 경우는 국민연금과 국민건강보험 47%, 고용보험 8%, 산재보험 3%였다.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에서 프레카리아트들은 절반 정도가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에서 법적으로 배제되고 있었다. 임금근로자 전체의 사회보험 법적 배제 규모가 14%인 것과 비교하면 매우 높은 수준이다.

프레카리아트들의 실질적 사회보험 배제 규모는 더 심각했다. 프레카리아트들은 국민연금에서 96%, 국민건강보험에서 87%, 고용보험에서 88%, 산재보험에서 91%가 가입하고 있지 않았다. 여기에는 사회보험 직장가입 적용 대상자임에도 불구하고 사회보험에 실질적으로 가입해 있지 않은 프레카리아트들을 포함하고 있다.

또 다른 프레카리아트들: 영세자영업자, 청년 및 장기 실업자, 니트족 등 구직단념자

앞에서 제시된 프레카리아트들은 임금근로자들이었다. 이들은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대표적인 프레카리아트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 이외의 또 다른 프레카리아트는 누구인가? 우선, 영세자영업자들이 여기에 속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영세자영업자들로 음식점 창업자들을 들 수 있다. 2013년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11년에 99만4,000개의 자영업이 창업해서 84만5,000개의 자영업이 폐업했다. 10명중 8.5명이 폐업한 것이다. 폐업률은 음식업에서 가장 높았다. 음식점 창업자 10명 중 9명이 폐업했다. 소매업과 도매업 역시 비슷한 수준이었다.

청년 니트족 및 프리터(단기 취업과 실업 상태 반복자), 장기 실업자들도 전형적인 프레카리아트들이다. 현대경제연구원(2015)에 따르면, 취업한 청년(15-29세)들은 40.5%에 불과하고, 2014년 니트족 청년은 전체 청년의 17.2%에 달했다. 그리고 미취업 기간이 1년 이상인 장기 니트족은 42.9%에 달했다. 정연순 등(2013)의 ‘청년 니트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년 니트 대부분은 대학 때부터 일 경험이 있었고, 열악한 노동조건과 불안정 고용에 시달리면서 취업과 실업을 반복해오고 있었다.

이외에도 절반 가까이가 빈곤하게 살고 있는 65세 이상 노인들, 싼 노동력의 원천이 되고 있는 노인들도 프레카리아트에 포함된다. 장애인, 노숙인들도 전형적인 프레카리아트들이다. 앞서 확인한 임금근로자들에 속하는 프레카리아트들, 그렇지 않은 영세자영업자, 청년 니트족 등 구직단념자, 빈곤노인들 등을 모두 포함한다면 우리나라에서의 프레카리아트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선, 노동시장의 불안정성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시급하다. 노동시장의 고용불안정 해소와 적정임금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사회보장제도를 구축해 놓는다 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나라 경제의 측면에서도 노동시장의 불안정성은 경제악순환의 반복을 양산할 뿐이다. 청년들은 더 적극적으로 일을 찾으려 하지 않을 것이며, 노동자들은 소비를 위해 지갑을 열기가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스스로 노동시장의 불안정성을 줄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기업들은 임금 및 사회보장에서 노동비용을 줄이고자 하는 것이 본능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파견, 용역, 특수형태 고용 등 비정규직을 활용함으로써 노동비용을 줄이는 것을 선호한다. 따라서 정부의 적극적인 규제와 개입이 필요하다. 최근 일본의 아베 정부는 경기회복세를 이어가기 위해 기업들에게 임금을 인상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춘투를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셈이다. 노동시장의 적정임금 보장이 나라 경제에 얼마나 중요한 지를 잘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거꾸로 가고 있다. 경제부총리는 ‘정규직 과보호론’을 주장하며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를 언급한다. 이는 프레카리아트를 양산하겠다는 선언이다. 대통령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기업의 노동비용 절감을 위해 정부가 앞장서겠다는 것인데, 역시 프레카리아트를 양산하겠다는 선언이다. 그 결과인지 세계은행이 발표한 ‘2015 기업 환경평가’에서 한국이 5위를 했다. 하지만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면 나라 경제가 살아난다는 정부의 주장과 달리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는 증거는 어디에서도 찾기 어렵다. 오히려 양극화는 더 심해지고 있고, 프레카리아트들의 삶은 더 열악해지고 있다. 나라 경제를 위해, 시민들의 평안한 삶을 위해 다른 처방이 필요하다. 실질적인 ‘경제 민주화’가 그 해답이다.

다음으로, 사회보장 시스템의 대수술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사회보험은 법제도적 측면에서 보면 대상자들을 충분히 포괄할 수 있을 정도로 완비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 사회보험 배제의 문제는 심각하다. 특히 프레카리아트들의 실질적 사회보험 배제는 심각하다. 법은 완비되어 있는데, 배제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은 행정 절차상의 관리감독 소홀이 문제일 수도 있고, 가입자의 기여회피 때문일 수도 있다. 전자가 원인이라면 사회보험의 관리감독이 보다 철저하게 진행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후자가 문제라면 기여회피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여 제도가 개선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행정의 문제나 제도의 미시적 개선으로 프레카리아트들의 사회보험 배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사회보험 시스템은 전통적 산업사회의 고용구조에 기반하고 있는 제도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이미 탈산업화와 서비스경제화 사회로 진입한 지 오래다. 전통적 산업사회의 사회보험 제도는 서비스경제 사회에서는 구조적으로 잘 작동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국가가 전통적 사회보험 시스템에 여전히 천착해있다면, ‘사회보장의 제도적 지체’ 현상으로 인해 사회보험제도가 오히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확대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이는 이미 서구의 일부 복지국가들에서 관찰되고 있는 현상이다. 따라서 전통적 산업사회에 적합했던 사회보험의 틀을 넘어서 서비스경제 사회의 틀에 맞는 대안적 사회보장제도의 수립에 관한 논의가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특히 안정적인 사회보험 기여 경력을 갖기 어려운 비정규직 프레카리아트뿐만 아니라, 사회보험 기여 경력 자체를 갖기 어려운 노동시장 외부의 프레카리아트들을 위한 대안적 사회보장 제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예를 들면, 청년 실업자들에게는 미래의 취업과 보험료 기여를 전제로 미리 구직급여를 신청하게 할 수도 있고, 사회보험 시스템을 완전히 탈피한 새로운 청년 기본소득 제도를 도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들에 대한 투자는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한 투자이기 때문에 결코 비용으로만 간주할 수는 없다.

한국 사회에서 프레카리아트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고달픈 일이다. 어려서는 열악한 보육서비스에 경악해야 하고, 유치원에 들어가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경험해야 한다. 초등학교에서는 한 끼에 3천 원밖에 안 되는 학교급식을 놓고 이해하기 어려운 싸움을 하는 어른들을 지켜봐야 한다. 이들이 자라서 국가가 그런 어른들을 부양하라고 요구하면 똑 같은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중고등학교에서는 대학에 가기 위해 무한경쟁에 돌입해야 하고, 대학에서는 취업을 위해 스펙을 쌓아야 한다.

대학에서는 전공 공부에 매진할 시간조차 없다. 학비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에 전념하다 보니 파트타임 학생으로 대학을 졸업하기가 쉽다. 스펙을 쌓아서 대학을 졸업한다고 해도 취업이 보장되지도 않는다. 취업한다고 해도 ‘미생의 장그래’처럼 인턴과 비정규직을 전전해야 한다. 노동시장에서 은퇴하여 자영업에 뛰어들지만 폐업을 밥 먹듯 할 뿐이다. 노후에는 푼돈 수준의 연금을 받으며 가난하게 살다가, 세상 사람들에게 “국밥 한 그릇 하시죠”라는 편지와 5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을 남기고 홀로 세상과 이별해야할 지도 모른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정부는 아이들을 외면하고, 청년들도 외면하고, 노동자들도 외면하며, 노인들도 외면하고 있다. 중소기업들도 외면하고 있다. 오직 재벌 대기업들에게만 따뜻한 손을 내밀고 있다. 한 나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업도 살아야 하지만, 기업이 만들어낸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할 시민들도 살아야 한다. 재벌 대기업을 살리고 나라 전체를 죽이는 선택을 할 지, 기업과 시민들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공생의 길을 선택해야할 지에 대한 답은 누구나 알고 있다. 조만간 한국 사회의 프레카리아트들이 공생의 길에서 행복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게 바로 복지국가의 길이다.

1) 백승호(2014). 서비스경제와 한국사회의 계급 그리고 불안정 노동 분석. 한국사회정책, 21(2). 백승호·이승윤(2014). Who are the Precariat?: Gendered precariousness in post-industrial South Korea. 한국사회정책 연합학술대회 발표문.

 2) 서정희·백승호(2014). 사회보험의 법적 사각지대: 임금근로자 적용 제외 규정과 규모의 변화. 노동정책연구, 14(3).

<복지국가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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