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무원연금 개혁 논란이 주는 정치적 교훈
최근 공무원연금 개혁 논란이 주는 정치적 교훈
  • 양평백운신문
  • 승인 2014.12.09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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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권능(복지국가소사이어티 상근연구위원)
최근 예산안이 통과된 후 본격적으로 공무원연금에 대한 개혁(악)이 진행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여당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국회에서 ‘사자방’과의 빅딜을 준비하고 있고, 대통령은 개혁(악)을 올해 안에 마무리해달라고 다시금 요청하였다. 노동시민사회의 사회협의체 구성에 대해서는 미온적이면서, 정치권은 이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점차 가시화하고 있다. 이 와는 달리, 최근 여론조사는 국민 10명 중 6명이 충분한 사회적 논의과정을 통해 결정하라고 요구를 보여주었다(한국사회여론연구소, 12/03).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시민사회에서 몇몇 의미 있는 제안들이 나왔고 시늉으로나마 토론회의 자리가 마련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다수의 국민이 바라는 사회적 논의는 아직 답보상태이며 개혁의 방향과 내용에 대한 합의는 요원한 상태이다.

전체적 틀 속에서 합리적인 선택을 하자

나는 지난 두번의 기회를 빌어 공적연금이 일반적으로 기초하고 있는 사회보장 및 연대의 원리에 충실한 개혁을 강조했다. 그리고 노후소득보장체계와 노동-보수체계라는 보다 큰 틀 속에서 정확한 자료와 정보 그리고 공무원의 특수성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를 바탕으로 개혁이 진행되어야 한다고도 했다.

보다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소득재분배 기능이 강화된 ‘더 내고 적절히 보장하는 연금’을 제안했다. 공무원이 기여금을 2%(이에 따라 정부도 2%의 기여금이 인상된다) 더 내고, 부가적으로 연대분담금과 재정안정화 기여금을 ‘하후상박’의 원칙에 따라 누진적으로 부과하며, 기존의 퇴직수당에 투여되던 재정을 퇴직연금으로 바꿔 이를 현 공무원연금제도에 덧붙여 2층의 공적연금 구조를 만들자고 했다. 그리고 제도적 개혁의 일환으로 재정안정화기금을 새롭게 창설하여 공무원연금의 재정적자를 메우는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자고 제안하였다. 이러한 개혁의 내용들은 궁극적으로 기존 1.9%의 급여율을 보장해줌으로써 현재의 소득대체율 62.7%(33년 가입기간 기준)을 현행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 제안의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사회보험으로서의 현 공무원연금제도가 합리적이다’라는 사실이 자리한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유럽에서 민간보험은 한껏 성행하다 실패했고, 이를 사회보험이 이어받아 오늘에 이르렀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과 이 과정에서 나온 학문적 논의들은 사회보험이 여타의 방식들보다 더 합리적임을 증명해왔다. 현재의 공무원연금은 사회보험의 원리가 그대로 적용되고 있기에 분명히 제도 자체는 합리적이다. 다만 제도의 구체적인 구성에 있어서 문제가 있음도 사실이다. 기여의 적은 몫에 비해 너무 많은 급여로 구성되었다. 즉 ‘저부담 - 고급여’의 문제가 있다. 또한 제도의 운영도 지나치게 정부의 자의적 판단과 결정에 좌지우지 된다는 점도 큰 문제이다. 공무원연금의 개혁은 원리와 원칙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내적으로 이러한 제도구성의 결함을 합리화시켜, 사회보험 고유의 합리성을 유지∙강화해야 한다.

사회보험의 합리성은 유럽의 선진복지국가들이 공무원연금에 투입하는 사회기여금의 몫을 작지 않은 비중으로 배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정부가 공무원연금의 기여금으로 내는 비중이 우리나라에 비해 월등히 높다. 2011년 기준 OECD 국가들이 평균적으로 부담하는 사회기여금의 크기는 우리나라의 그것보다 대략 4배 이상이 높다(OECD, Government at a Glance 2013). 이렇게 높은 이유는 명백하게 사회보험이 갖고 있는 합리성, 즉 시장메커니즘에 기반하는 민간보험보다 그리고 개인이나 개인의 가족이 알아서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자구방식보다 더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국민도 공무원연금에 대한 ‘다시 보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국민들이 이러한 제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서는 다소 걱정이 앞선다. 그것은 국민다수가 공무원연금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보여준 동의 때문이다(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질문에 70%가 넘는 동의가 나타난다). 개혁의 방향은 사회적 논의과정을 통해 만들고 선택하라고 하면서도 그리고 이해당사자인 공무원들의 참여도 인정해 줘야 한다면서도, 궁극적으로는 개혁자체는 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여론의 동향은 국민다수가 개혁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다소 신중하게 판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정부여당의 공무원연금 개혁(악)안이 타당하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는 점은 논쟁을 통해서 일정 정도는 이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국민들은 공무원연금의 개혁을 바라고 있을까? 거기에는 타당한 이유들이 있다.

우선, 공무원들이 민간근로자보다 좋은 근로조건 속에서 높은 임금을 받으면서 연금마저 후한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생각하고 있다. 사실, 공무원이 받는 봉급∙수당∙상여금 등의 임금은 민간근로자와 비교했을 때 그리 낮은 편이 아니다. 주로 비교의 대상이 되는 것은 상시근로자 100인 이상 사업체인데, 여기서 근무하는 노동자의 수는 총 근로자들 중에 대략 27% 정도가 된다(고용노동부, 「사업체노동실태현황」). 물론 이 기준 내에서도 공무원들은 직급에 따라 보수수준이 다르다. 5급으로 시작한 공무원의 경우에는 민간근로자 보다 높은 수준이지만 7급과 9급으로 시작한 공무원들은 민간근로자보다 낮다. 특히 9급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더 낮다. 2013년 기준으로 보면, 9급 3호봉으로 시작할 때 월보수총액 약 200만원이고, 34년의 재직 후 가장 높은 호봉일 때는 약 575만원이 된다 (김태현 외, 2013).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무원들은 평균임금 수준에서 상위 30%에는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들은 연금마저 자신들 보다 높기 때문에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느낄 만 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공무원들의 보수가 민간근로자들의 그것과 비교했을 때 높다는 점을 사회적으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문제가 되고 있는 공무원의 보수가 OECD의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보면 그리 높지 않다. 예를 들어, 2011년 기준 우리나라 중간관리 공무원의 보수는 24개국 중 18위를 차지한다. 특히 사회보험료 등을 국가가 부담해주는 사회기여금 항목이 현격하게 낮은 특징을 보여준다. 그리고 대졸자와의 비교나 1인당 GDP를 기준으로 했을 때도 우리나라의 순위는 비슷하다. 즉 유럽 대부분 나라들도 공무원의 보수가 민간근로자들의 그것보다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이며, 그 정도에 있어서도 우리나라보다 더 크다는 것이다(OECD, Government at a Glance 2013). 이러한 국제적 경향은 공무원의 총보수가 민간근로자들의 그것에 비해 높을 수 있음을 객관적으로 보여준다.

국민들이 갖는 판단 중 또 다른 하나는 공무원연금의 적자를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메우는 것은 잘못이다라고 것이다. 즉 정부의 적자보전금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적자보전금은 달리 이해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가 공무원연금을 위해 기여하는 정부부담금(기준소득월액의 7%)과 퇴직수당부담금(기준소득월액의 2.3%)이 여타의 국가들에 비해 매우 낮기 때문에,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쓰이는 적자보전금은 원래 정부가 부담해야 하는 정부부담의 다른 형태라고 이해할 수도 있는 것이다. 공무원의 임금이 상대적으로 높아야 된다는 점을 인정하게 되면 이에 대한 실질적인 재원이 확보되어야 하는데, 이 방식 중 하나가 바로 적자보전금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어차피 ‘고용주로서의 국민’은 공무원에게 노동비용을 제공해야 하는데, 봉급∙수당∙상여금 등의 임금, 공무원연금의 정부부담금, 퇴직수당부담금, 그리고 공무원연금의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한 적자보전금 등의 형태로 이를 제공하는 셈이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공무원에 대한 신뢰의 결여이다. 국민들이 공무원이 지금까지 보여준 행태들로 인해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공무원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공무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않은데 이에 대한 보상은 너무 잘해주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표현이 흔히 사람들이 공무원을 가리켜 말하는 ‘영혼 없는 직업’이라 것이다.  불친절함, 무사안일, 대부분의 민간인들이 한번쯤은 들어본 « 저의 관할이 아닙니다. 다른 부로 가세요 »라는 책임회피 등은 언제나 비판의 대상이 되는 태도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미래에 치명적인 결과들을 초래할 수 있는 사안들에 대한 반복적인 침묵과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공무원사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인식과 의지의 부족 등이 가장 큰 요인으로 보인다.

아쉬운 점은 유럽의 공무원들과 비교했을 때 더욱 선명하다. 현재 사회보장체제와 복지국가의 후퇴에 가장 강력하게 반발하고 제대로 중심을 잡도록 유도하는 세력은 바로 공무원들이다. 물론 공무원의 수가 많고 경제활동에서도 공공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공무원들이 보여주는 체제 순응적인 태도와는 너무나 다르며, 보다 나은 사회(달리 말하면 공익이 제대로 실현되는 사회)에 대한 선도적이고도 실천적인 활동들은 부럽기 그지 없다.

‘좁은 연대’에서 ‘큰 연대’로 가자

이러한 적극적인 모습, 국민다수와 같은 호흡을 하는 공무원의 모습을 우리나라에서 보는 것은 정말로 요원한 것일까? 사실, 국민들도 공무원연금의 하향화를 마냥 바라는 것이 합리적인 결정은 아닐 것이다. 공무원연금의 하향화는 다음 수순으로 국민연금의 하향화를 불러일으킬 것이고 결국은 ‘공적연금 죽이기’가 지그재그 방식으로 이뤄질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익 실현’은 주로 공무원들을 통해서 이뤄지므로 이들을 포섭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사안이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국민들은 무엇보다도 공무원들의 적극적인 실천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 요구의 수용이 공무원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는 최선의 방안이다. 그리고 공무원연금 바로세우기에 대한 국민적 지지는 바로 이 불신해소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혹자는 공무원들에게는 정치적 중립이라는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물론 유럽에도 정치적 중립의 의무가 강조된다. 하지만 그 어느 사회도 사회를 나쁜 쪽으로 몰아가는 개악에 대한 반대가 정치적 중립의 대상이 된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렇다면 개악을 판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그것의 일차적 기준이 바로 ‘공익실현’이다. 공익을 해치는 것은 바로 개악인 것이다. 정치적 중립이란 현실정치판의 여야 대립 구도 속에서 어느 누구의 사적인 이익 또는 그들만의 이익을 위해 편들지 말라는 의미이지 국민다수가 공유하는 이익, 즉 공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국민다수의 객관적 이익에 위배되는 정부나 현실정치세력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이러한 정치적 중립의 사안이 되지 않는다.

사실 19세기의 유럽에서 공무원들은 소수를 위한 정부, 소수를 위한 정책, 소수를 위한 공권력의 사용을 도와주는 집단이었다. 그리고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이란 바로 이 맥락에서 소수의 지배세력과 공무원을 갈라놓기 위해 개혁세력이 주창한 것이다. 개혁이 일정 정도 성공을 거두면서, 공무원은 ‘공익 실현’이라는 임무를 부여 받았고, 실제로 공무원들이 그것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면서 공무원의 역사가 바꾸었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공무원도 그러한 역사적 순간을 지금 맞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바로 공무원연금 개혁(악)안을 제대로 된 방향으로 돌리는 것을 노동시민사회와 함께 함으로써,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경험을 향후의 ‘공익’의 대표적 대상인 사회보장제도와 복지국가정책의 확대에도 공유함으로써, 공무원집단의 성격변화를 시도가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이러한 공무원집단의 변화는 기존의 ‘좁은 연대’에서 보다 ‘넓은 연대’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이제까지 공무원집단은 자신들만의 협력, 자신들의 이익에 치중한 활동과 실천을 중심으로 뭉쳐 소기의 성과를 내었다. 하지만 국민이 공무원집단에 대해 갖는 인식은 점차 부정적이 되어갔고 시민사회가 경험한 공무원집단과 공동활동은 점차 회의를 낳기에 충분했다. 이제는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이를 위해, 누구보다도 공무원집단이 이제는 우리나라의 국민다수의 공익을 위해 어떠한 공동의 길을 갈 것인지에 대한 입장잡기가 필요하다. 공무원연금 보다 크게는 공무원의 노동-보상체계는 공무원의 실질적인 공익실현에 대한 적절한 대가로 지불되는 것이며, 특히 그 지불의 정도가 후한 것이다. 그렇다면, 공무원도 이에 호응하여 ‘국민다수를 위한 공무원’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유럽에서는 복지국가의 제도들과 정책들을 지키려는 혹은 보다 확대하려는 공무원들의 파업은 일상적이다. 나는 이런 파업을 내 조국 한국에서도 보고 싶다. 그곳에서의 공무원은 결코 국민다수의 적이 아니라 그들의 친구이고 그들의 동지이며 그들의 손발이듯, 한국에서도 그러한 공무원의 진면목을 보고 싶다. 한국이라는 공동체를 기반으로 공무원과 국민다수가 ‘공익의 항시적 실현’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위해 서로 협력하고 협동하는 그러한 연대, 보다 ‘큰 연대’가 이뤄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러한 연대의 틀에서는 기존의 관료주의적 폐해는 설 자리가 없다. ‘제 관할이 아닌데요’라는 무관심과 책임회피도 없다. 공무원과 일반국민은 동일한 시공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상호 의존하면서 공존하는 모습이 있을 뿐이다.

공적연금의 공고화를 통해 사회통합을 강화하자

무엇보다도 공무원연금의 문제, 더 나아가서는 공적연금의 문제는 한 사회의 내적 통합에 관련된 문제이다. 사회통합은 현재 우리나라의 정부여당이 생각하는 것처럼 한 위대한 정치가가 나와서 통솔력을 발휘함으로써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도덕∙윤리∙역사 등을 통해 교육하고 언론을 교화시킴으로써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현실의 ‘먹고 사는 문제’를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서로 힘을 모아 ‘함께’ 해결하는 경험들이 쌓임으로써 형성되는 것이다. 나의 삶이 다른 구성원의 삶과 서로 엮여 있고 나의 이익이 다른 구성원이 이익과 동일하거나 양립하는 경우들을 많이 만들어내는 것, 그로부터 비로소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이 생겨나고 구성원 사이의 연대감과 연대의식이 나온다.

노후의 소득보장은 바로 이러한 공통분모이다. 오늘날 노후소득보장은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의 급진전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다. 돌려 말하면, 노후소득보장제도를 얼마나 잘 ‘서로 함께’ 그리고 ‘서로 엮이는’ 방식으로 구성하느냐가 사회통합의 핵심적인 과제가 된다는 것이다. 이를 성공하는 사회는 보다 나은 사회로 나아갈 사회적 자본을 구축하게 되는 것이고, 이에 성공하지 못하는 나라는 계속해서 노인빈곤이라는 현실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 공적 재원을 상시적으로 투여하면서 세대간에 갈등이 강화되고 계층간의 갈등으로 인해 또 다른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은 바로 이러한 노후소득보장의 핵심적 장치이다. 공무원연금은 단순히 공무원들의 노동에 대한 대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고용주’로서의 국민다수가 자신들의 공유하는 사안인 노후소득보장을 해결함에 있어서 손발을 빌리기 위해 제공하는 것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이러한 공유된 사안들의 영역을 확장시킴으로써 우리의 삶이 지나치게 이기적인 방향으로 흐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타인과의 사회적 연결망 속에서 구축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에 대한 대가인 것이다. 즉 여기 저기서 사회통합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임무 때문에, 공무원은 민간영역에서의 보수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는 것이다.

공무원연금을 통한 복지국가의 정치화

정치란 단순히 통치의 기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환경과 여건을 전략적으로 이용하면서 ‘주고 받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구체적 수단들은 보다 상위의 목적, 즉 ‘공동체의 각 구성원이 서로 공유하는 이익, 즉 공익을 실현한다’는 목적을 위해 사용될 때에만 정치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공무원연금은 노후소득보장이라는 ‘공익실현’이라는 정치를 구현한다.

하지만 공무원연금이 내재하고 있는 정치적 의미는 여기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공무원연금의 유지 및 공고화를 위한 국민의 지지와 기여는 반대로 공무원에게 복지국가가 지향하는 사회정책, 경제정책, 행정정책 등을 보다 적극적으로 입안하고 수행하는 자발성을 요구한다. 그리고 ‘공익 실현’의 강화를 위해 정책과정 및 행정현장에서 국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여러 통로들을 다양하게 구성해내도록 요구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보와 자료의 투명한 공개와 이렇게 개방된 것을 중심으로 공론이 활발하게 일어나도록 유도하는 것도 ‘공무원연금’에서 시작하여 향후 달성해야 할 정치의 진면목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이나 공무원들의 노력만으로 정치를 올곧게 세울 수 없다. 무엇보다도, ‘공익실현’을 최우선적 목적으로 삼는 정치세력이 필요하다. 공무원연금의 개혁(악)은 지속적으로 제기될 수 있는 사안이다. 국민연금 또한 마찬가지이다. 현재의 정부여당의 ‘복지국가 죽이기’를 보면, 이러한 위기감은 더욱 크다. 결국 ‘공익 실현’을 최우선으로 내세우는 복지국가가 제대로 우리나라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현실정치의 판에서 이를 실현시킬 구체적인 실천세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는 공무원집단을 넘어서 우리나라의 전반에 걸쳐 일어나야 할 변화이다.

물론 몇 해전부터 복지국가는 우리나라의 화두가 되었고, 여러 정치세력들이 모두 하나같이 복지국가의 실현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변한 것이 없다. 제대로 이를 실현시킬 세력은 아직까지도 형성되지 않았고 따라서 등장하지도 않았다. ‘복지국가의 건설’은 보다 깊은 사회철학적인 기반 위에 여러 원칙들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 여러 새로운 제도와 정책수단들을 개발해 내야 한다. 그리고 이들 각기 다른 요소들 사이의 내적인 통일성과 일관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플랜을 법으로 제도화하고 공무원들의 판단기준으로 정립시켜 놓으며 자라나는 세대에게 교육을 통해 체화될 수 있도록, 공적 권력을 운용할 세력의 구체적 실천이 있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온전히 복지국가를 제대로 실현시킬 수 있는 그리고 그것에 몰두하려는 의지가 있는 정치세력을 우리나라는 키워내야 한다. 그것이 공무원연금의 개혁(악) 시도가 우리사회에 던지는 실천적 교훈이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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