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품위 있는 생활.
성도의 품위 있는 생활.
  • 양평백운신문
  • 승인 2014.09.30 06:0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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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7:29-35,(신약 270면)

할렐루야!

지난 17일 모 신문에 난 기사에 일본의 노리코 공주가 왕족이 아닌 일반인과 결혼을 하게 되어 나라에서 왕족이었던 자의 품위 유지를 위해 1억657만엔(약 10억290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고 교도통신이 최근 보도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몇 년 전에 국회의원들의 품위 유지비로 연간 100억원 정도가 지출되고 국회의원을 지낸 분들은 65세가 넘으면 매월 120만원의 품위 유지비를 지급하기로 국회에서 처리했다고 합니다.

품위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사회생활 과정에서 형성된 사회적 관념으로서, 사회 성원들이 각각의 지위나 위치에 따라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품성과 교양의 정도’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품위라는 말은 사회의 지위나 위치에 따라 갖추어야할 품성이나 교양을 말하는 것이지 사회적 지위나 위치에 맞는 경제적 척도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나라의 경우 정치하시는 분들을 품위 있는 분들로 인식하는 국민은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은 성도의 품위에 대한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은 35절에서“...이치에 합당하게 하여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여기 “이치에 합당하게 하여”라는 말씀은 헬라어로 유스케몬이라고 하는데 이는 우아한 외모를 가진, 고귀한, 부유한,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표준새번역은 이를 “품위 있게 살면서”라고 번역을 하였고 공동번역은 “아름답게 살며”라고 번역하였습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아름답고 품위 있게 살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이 편지를 쓰셨습니다. 본문 말씀은 사도바울의 결혼에 대한 개인적인(25절) 권면의 말씀으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성도의 품위 있는 결혼 생활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꼭 결혼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반적인 생활에서도 돌아보아야 할 말씀이기도 합니다.

성도님들도 본문의 말씀을 통해 아름답고 품위 있게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권면한 품위 있는 성도의 생활은 무엇일까요?

첫째, 성도는 겸손하고 절제된 생활을 통해 품위 있는 생활을 할 것을 권면합니다.(29-31절)

29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 30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 31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본문의 말씀은 아내나 남편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마음이 슬프거나 기쁜 자들은 마음의 자제를 어떤 좋은 물건을 소유한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고 세상의 많은 혜택을 누리며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고 권면합니다. 이는 이 세상의 것으로 인해 너무 자랑하고 자만하지 말고 겸손하며, 감정의 좋고 나쁨에 따라 너무 지나치게 표현하지 말고 자제하며 세상적인 것들을 소유하였다하여 자랑하고 교만에 빠지지 말고 절제의 생활을 할 것을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우리 주변에 너무 가족을 자랑하거나 감정의 기복이 심한 사람, 그리고 자신의 가진 것으로 인해 교만하게 행동하는 사람을 보면 품위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바울은 성도가 신앙인으로 품위 있는 생활을 위해서는 겸손한 마음과 절제된 생활을 보여 줄 것을 당부합니다.

오늘 여러분의 경우는 어떠한 모습인가요? 얼마 전 중국의 유명 여배우와 우리 나라 감독과의 결혼이 큰 화재가 되었습니다. 화재의 주인공은 ‘만추’로 널리 알려진 김태용 감독과 중국의 유명 영화배우 탕웨이입니다. 한 기자가 탕웨이 에게 김태용 감독에 대해 묻자 탕웨이는 “김태용감독은 매우 품위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김태용 감독은 대학에서 영화와 시나리오를 가리키는 사람이었는데 영화 ‘만추’를 하면서 연습 대상이 없어 김태용 감독에게 연습 대상이 되어 달라고 했더니 자상하게 리어설을 함께 해주고 때로는 쑥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한국 사람은 이렇게 쑥스러움이 많은가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모습이 교수나 감독이라는 권위주의를 벗어난 순수한 인격이 품위 있는 사람으로 보였다는 것입니다.

겸손하게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 자신의 가진 것을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 절제된 마음으로 다른 사람과 어울릴 줄 아는 사람 이런 사람이 품위 있는 사람이 아닐까요?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셨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 땅에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우리의 친구가 되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해 대신 죽어주셨습니다. 진정한 품위는 예수님의 모습 속에 있지요. 우리 성도님들도 예수님을 닮은 품위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성도는 이 세상의 것들에 너무 집착하여 염려와 근심 속에 살지 말고 인생의 중요한 것이 주님 안에서의 삶인 것을 깨달아 품위 있는 생활을 할 것을 권면합니다.(32-34절)

32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되 / 33 장가 간 자는 세상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 34 마음이 갈라지며 시집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하느니라

오늘 말씀에서 바울은 결혼을 하면 서로 배우자에게 얽매이게 될 것을 경고합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누구에게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게 되고 특히 신앙인은 얽매일 배우자가 없기 때문에 마음껏 주님을 섬길 수 있다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결혼을 하지 말든지 부부간에 서로 사랑의 의무를 저버리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사도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혼이라는 것이 좋은 것이지만 하게 되면 이처럼 얽매이게 되는 것을 감수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적인 것은 가지면 가질 수 록 염려와 걱정이 생기게 되고 그러면서 점점 주님과 멀어지는 것을 바울은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본문의 말씀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뜻은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의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주님의 일을 하며 사는 것이 우리 성도의 인생의 중요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적인 것에 집착하여 염려와 근심 속에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부부는 부부로써의 염려가 있게 되고, 사업을 하는 사람은 사업에 실패를 하든지 성공을 하든지 사업에 집착하고 몰두하다가 주님을 잃어버릴 수 있게 되고. 취미 생활과 여가 생활에 집착하는 사람은 취미와 여가 생활로 인해 주님을 잃어버릴 수 있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성도들이 이렇게 될 것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눅 9:62)”고 말씀하셨으며 마태복음에서는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 10:37-39)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말씀에서 “이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적인 것은 때가 되면 다 사라지게 됩니다. 부부도 그렇고 자식도 그렇고 재물도 그렇고, 명예와 권력도 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떠나가고 나와 주님만이 영원히 남게 됩니다. 성도의 품위는 이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야 합니다. 그럴 때 성도의 품위가 나타납니다. 세상의 것들 때문에 너무 염려하고 근심 걱정하지 말시고 주님이 주시는 자유와 평안을 누림으로 성도의 품위 있는 생활을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셋째, 성도는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주님 만날 날을 바라보며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김으로 품위 있는 생활을 할 것을 권면합니다.(35절)

35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당하게 하여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35절에서 사도바울은 행여나 성도들이 자신의 권면을 오해할 수 있기에 자신의 권면이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라고 말씀합니다. 오해의 할 수 있는 것은 “결혼을 하지 말고 홀로 주님의 일만 하고 살아야 된다. 세상적인 것은 모두가 부질없는 것이니 세상적인 것들을 등한히 여기고 교회에서 주님의 일만 하고 살아야 한다.”는 등등의 오해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자신이 권면한 이유를 “성도들을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라 품위 있는 생활을 하여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고 주님만을 섬기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의 권면을 바로 이해하려면 그가 강조하는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29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31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바울은 성도들이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고 주님을 온전히 섬기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이와 같이 권면을 하였습니다. 사람의 본질, 인생의 본질, 특히 성도의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 잊지 말기를 바라는 바울의 심정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말세가 다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정작 그들은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말세를 잊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은 세상 사람들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성도들도 똑 같습니다. 성도가 세상 사람들과 같다면 어찌 성도다운 품위가 보일 수 있을 까요? 이는 세상을 포기하고 살라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 성도들은 본질을 알고 이 땅에서 장차 주님 앞에 서게 될 자신의 모습을 준비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품위 있는 성도들은 더 열심히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사람들 중에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한 소자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니라.”는 말씀처럼 세상의 사람들을 예수님 섬기듯이 섬깁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들이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며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이유가 우리 성도들이 이치에 합당한 성도의 품위 있는 모습을 상실하였기 때문은 아닌지요? 우리는 장차 예수님 앞에 서게 될 우리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때를 생각하며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만을 바라보며 섬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님들은 이 시대 가장 품위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여러분들을 볼 때 성도로써 품위 있는 사람들로 인정받기를 바랍니다. 걸음걸이부터 언어생활에 이르기 까지 생활 속에서 겸손하고 절제된 생활을 통해 여유로운 품위가 풍겨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세상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주님이 주신 자유와 평안을 누리며 저 천국을 바라보며 흐트러짐 없이 주님이 주신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여 품위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순복음 강변교회 박원서 목사(2014년 9월 21일 설교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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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사랑 2014-10-01 14:06:05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