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경(越境)하는 여성````들
````월경(越境)하는 여성````들
  • 신문사
  • 승인 2004.09.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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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전 세계 가임 여성의 4분의 1이 월경을 하고 있다. 모든 여성이 한 달에 한 번씩 약 일주일 동안 경험하는 것이 월경이다. 그러나 월경은 종종 이름 대신 ‘그날’ ‘그것’ ‘마술’ 등으로 불리며 은밀하고 부끄러운 것으로 취급당한다. 어느 종교인은 “기저귀 차는 여자는 교회 강단에 (목사로) 설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하고, 어린 소녀들은 생리대를 사러 간 가게에서 남들이 볼세라 조심스레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나오기도 한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여성주의자인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여성망명정부에 대한 공상’이란 책에서 ‘어느 날 갑자기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이란 질문을 던진다. 스타이넘은 월경이란 분명 부럽고도 자랑할 만한 남성적인 일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남자들은 자기가 얼마나 오래 그리고 많이 하는지 TV에 나와 떠들어댈 것이고, 초경을 한 소년들은 이제야말로 남자가 되었다고 좋아할 것이다. 그날을 기념하기 위해 선물 증정과 종교의식·가족 축하행사가 이어질 것이고, 소년들의 집에서는 초경이 묻은 침대 시트를 깃발처럼 자랑스럽게 문 밖에 걸어 놓을 것이다. 의회는 지체 높은 남성들의 노동력 손실을 막기 위해 국립 월경불순연구소에 특별기금을 지원할 것이고, 의사들은 심장마비보다 생리통에 대해 더 많이 연구할 것이다. 생리대는 연방정부가 무료로 배포할 것이고, 생리대 광고에는 ‘총각들의 산뜻한 그날을 위해’라는 문구가 쓰일 것이다. 성직자들은 신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려고 피를 주셨다고 말할 것이고, 매월 한 번 행해지는 정화의식이 없는 여성들은 깨끗할 수가 없다고 할 것이다. 현실에서 월경은 천덕꾸러기다. 어떤 사람은 짜증을 내는 여성에게 “너 생리하지?”라며 놀리듯 묻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생리 중인 여성이 앉았던 자리에 앉지 않는다고 말할 만큼 월경을 불결하고 찜찜한 것으로 취급한다. 이런 월경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해 ‘월경 페스티벌’이 열린 지도 6년이 되었다. ‘혈기충천’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페스티벌의 취지는 월경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생리통·생리도벽·우울증·짜증 등 월경 전후 증상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긍정적으로 변화시켜 보자는 것이다. 제6회 월경 페스티벌이 열린 현장 속으로 잠시 들어가보자. 지난 4일 오후 6시30분 서울 광진구 화양동 건국대 노천극장에서는 ‘혈기충전―월경하는 나, 하늘을 찌를 듯한 자신감을 갖자’는 주제의 제6회 월경 페스티벌이 열렸다. 노천극장으로 들어오는 길목에는 대안생리대 판매, 피임에 관한 편견과 상식, 월경통을 완화해주는 체조와 음식, 성병의 종류와 치료법 등 다양한 주제별 부스가 설치되고 삼삼오오 모여든 사람들은 이전에 쉽게 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었다. 이날 본 행사에 참여한 사람은 1000여명. 작년 연세대에서 열린 5회 본 행사 참가자가 4000여명인 것에 비하면 적은 인원이지만, 철제로 쌓은 무대를 반원으로 둘러싼 이들은 연신 “오호∼” “삐이빅∼” 하며 열띤 호응을 보였다. “지금 생리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공연 사회자인 여성주의 전문 MC 최광기씨의 우렁찬 목소리에 맞춰 노천극장 계단과 바닥에 앉아서 공연을 구경하던 여성들 중 4분의 1가량이 힘차게 손을 들었다. “오늘 피 보고 계시는 분들은 복 받으신 겁니다”라는 말에 이어 공연 중이던 한 배우는 생리 중인 여성들에게 장미꽃을 나눠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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