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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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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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사는 신라 경명왕7년(923)에 고승인 대경대사(大鏡大師)가 제자 융문과 함께 창건(創建)하고 5층 석탑과 노사나불상(盧舍那佛像)을 조성(造成)하여 봉안(奉安)하고 절 이름을 사나사(舍那寺)로 하였다. 고려 공민왕 16년(1367)에 태고왕사(太古王師) 보우(普愚)가 140여칸 규모로 중건(重建)하였으며 고려 우왕 8년(1382) 12월 24일 보우(普愚)스님이 용문산 소설암(小雪庵)에서 입적(入寂)하였는데 이듬해인 1383년에 문인(門人) 달심(達心)이 태고(太古)의 부도와 비를 사나사에 세웠다. 선조 25년(1592)에 일어난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사찰이 불타버린 것을 선조 41년(1608)에 단월(檀越) 한방손(韓芳孫)이 재건하였다.영조 51년(1773)에 양평군내(楊平郡內) 유지(有志)들이 뜻을 모아 당산계(堂山契)를 조직하고 향답(鄕沓)을 사찰에 시주하여 불량답(佛糧沓)을 마련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경내에 비를 세웠다. 순종(純宗) 원년(1907)에 일제의 침략에 항거하는 의병(義兵)들의 근거지라하여 사찰을 모두 불태웠다. 그후 2년뒤인 1909년에 계헌(戒憲)이 큰방 15칸을 복구하였으며 1937년에 주지(住持) 맹현우(孟玄愚) 화상(和尙)이 대웅전(大雄殿) 15칸을 재건하고 조사전(祖師殿) 5칸을 지었다. 1950년에 일어난 6.25사변으로 인해 사찰이 전소(全燒)된 것을 1956년에 주지(住持) 김두준(金斗俊)과 함문성(咸文成)이 협력하여 대웅전(大雄殿) 산신각(山神閣) 큰방 등을 재건하고 함씨각(咸氏閣)을 지었다.1993년에 현 주지(住持) 한영상(韓榮相)이 대웅전(大雄殿)과 지장전(地藏殿)을 재건하였다. 경내에는 도유형문화재 72호인 원증국사석종탑(圓證國師石鍾塔)과 도유형문화재 73호인 원증국사석종비(圓證國師石鍾碑)가 있다.♠현지교통 1) 상봉터미널 -용문, 용문사행 직행버스 수시운행 2) 용문에서 시내버스 수시운행 3) 양평 - 옥천행, 용천2리 마을회관 앞에서 하차(1일 6회운행)♠도로안내 6번국도 옥천 -> 옥천냉면앞 좌회전 -> 유명산 방면 간선도로 -> 용천주유소 지나 우회전 -> 사나사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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