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없다 탓하기 전에 점포 유리창이라도 한번 더 닦는, 자구노력이 시급합니다
손님 없다 탓하기 전에 점포 유리창이라도 한번 더 닦는, 자구노력이 시급합니다
  • 김강윤
  • 승인 2001.11.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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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까치만 봐도 반갑다'라는 말이 있다. 서울 거리에서 '양평 해장국'간판을 보면 그 말이 문득 떠오른다. 갈수록, 같은 디자인의 '양평해장국' 간판을 단 집들이 자주 눈에 띄는 데, 그 중에 한둘은 모방한 간판을 내걸고 있어 본점과는 무관해 보이는 아류로 여겨진다. 아류가 등장할 만큼 양평 음식이 유명해지고 있다는 게 생기는 거 없이 흐뭇하다. 얼마 전, 비슷한 경험을 또 하나 했다. 서울 사는 먼 친척집에서 집안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 없는 집주인과 나란히 베란다로 내몰려 처량하게 담배를 피우다가 양평제품이라 명기된 '자연햇살'고추장 깡통을 발견한 것이다. 집주인은 양평 고추장인지 평양 고추장인지 관심 밖이어서 안주인에게, 언제부터 사다 먹었는지, 맛은 어떤지 물었다. 입 소문에 구입을 시작했고, 대놓고 먹은 지가 한참이고, 그런 집들이 주변에 꽤 되며, 저네 집 장류는 모두 같은 제품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작 양평에 사는 사람들은 '자연햇살'이라는 상표를 잘 몰라서, 꽤 여럿에게 물어보고서야 만든 곳을 알아낼 수 있었다. 찾아가 보니 필자도 익히 알고 있는 '창대리 된장공장'이었다. 대부분의 양평사람처럼 정식명칭이 '주식회사 발효촌'이라는 것만 몰랐을 뿐. "이 자리에서 고추장된장 만든 지가 이제 근 사반세기입니다. 몇년전까지는 전량 군대에 납품을 해왔기 때문에 인지도가 높지는 않죠. 그래도, 상표 알리려고 애를 쓰지는 않습니다. T.V광고 할 만큼의 생산물량도 아니고, 또 그럴 돈도 없고. 물건 잘 만드는 것보다 더 훌륭한 광고는 없다는 게 제 신조입니다." 오기열씨(71세, 발효촌대표·양평군기업인협의회장)는 그 말에 덧붙여, 찬찬히 지은 집이 단단하듯 사업체의 신용은 벽돌 쌓듯해야 한다, 고 첨언한다. 오기열씨, 창대리에 자리잡은 '78년 이전까지는 양평과 전혀 무관하다. 전주에서 태어나 전북대 화학과를 졸업한다. 학창시절, 반장에서부터 학생대표까지 늘 학우들을 통솔하는 위치를 지켜, 농사짓던 아버지를 비롯 주변 사람들 거의가 장차 정치인으로서의 출세를 기대하고 본인 역시 정치인의 꿈을 키우지만, 결국 작파하고 만다. "입학금은 겨우겨우 마련했지만 학업을 계속할 방법은 도통 짜낼 수가 없었죠. 해서, 총장님을 직접 찾아 뵙고, 구내식당 아르바이트를 얻어냈습니다. 새까만 신입생이 총장실 문을 두들기기가 쉬웠겠습니까? 4년 내내 8시간 수업 받고 8시간 식당일하면서 내 부모형제가 돈 때문에 받는 고통을 늘 절감했습니다. 하루바삐 집안을 일으켜 세울 욕심으로 졸업하자마자 사업판에 뛰어들었습니다." 오기열씨는 또 한 사람의 은인을 만난다. 자취방의 집주인 이리여고선생(이름을 잃어버린 점을 무척 죄송해 했다)이 적금을 깨 사업밑천을 꿔준 것이다. 그 돈으로 소규모 연탄공장을 차린다. 사업은 연탄불처럼 타올라 긴 호황을 맞는다. 점점 도시화되면서, 공장은 자꾸 외곽으로 밀려난다. 이래저래 성가셔 양곡보관창고로 전업한다. 순조롭기는 했지만, 줄지도 커지지도 않는 사업에 곧 진력이 난다. 우연한 기회에 '창대리 된장공장'을 인수하고 전주와 양평을 오가다가 아예 창고사업을 접어 버린다. "군납이라는 게 참 편한 사업입디다. 소비량 확실하고 결제 확실하고... 좀 심심타싶을 정도가 되니까 주변에 눈이 가더군요. 당시 양평에는 57개의 제조업체가 있었는데 이렇다할 모임도 없고 해서, 상공회의소 발족을 목표로 우선 기업인협의회를 조직했습니다. 그때 앞에 나선 연유에 지금까지 회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그러나, 20여년이 흐른 현재까지 상공회의소는 발족하지 못했고 가입업체도 절반 너머 줄어 있다. 양평경제의 침체가 일목요연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간 협의회 차원에서 많은 경제활성화 방안을 도출해, 관계기관에 건의도 하고 요구도 해오긴 했죠. 양평군도 퍽 열성을 갖고 접근했지만, 번번이 중도하차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지역의 군사적, 환경적 측면을 들어 상부기관에서 끝내 허락을 않습디다. 게다가 IMF까지 겹치고 보니 양평에서 사업하는 사람들 처지가 참 고달퍼지고. 하지만,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낼 생각을 저버린 적은 없습니다. 뭐가 되었든, 주어진 환경에서 가능한 사업을 찾아낼 일차적 책임은 기업인의 몫이 아니겠습니까?" 한동안 친목단체 수준에 머물러 있던 양평군기업인협의회 회원들은 요즘 회동자리에서 복안강구에 열중이라고 한다. 그 자리에서 양평경제침체에 따른, 자체 반성도 적지 않다 한다. "비근한 예로, 많은 주민들이 양평을 벗어나 타지역에서 쇼핑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 있지 않습니까? 양평에 없는 거야 할 수 없지만, 양평에 지천인 것도 나가서 산다 이 말입니다. 이유가 뭐겠습니까? 더 싸고 더 친절하고 더 편리하니까 나가는 거죠. 아직도, 우리 가게가 싫으면 딴 데 가서 사라는 식의 배짱상인이 많아요. 예전에야 교통편이 어려우니까 그게 통했죠, 지금이야 어딘들 못 갑니까? 손님 없다 탓하기 전에 점포 유리창이라도 한번 더 닦고, 다리품 팔아 조금이라도 더 좋고 싼 상품 매입하려는 자구노력이 시급합니다. 이 상태로 가다가는 그나마 고객들도 전부 잃게 됩니다." 말끝에 오기열씨는, 회원들 형편이 어렵다보니 기업인의 사회적 책무를 등한시하게 되어 마음이 불편하다 덧붙인다. 올 가뭄에 30여대의 레미콘차로 종일 물을 실어 나른 것 외에는 별로 한 일이 없다고 한다. 라이온스클럽에 몸담았던 오랜 기간, 지역사회에 보탬되는 이런저런 일에 깊이 관여했던 그로서는 적잖이 짐이 되는 듯싶다. 더욱 짐이 되는 건, 재벌에게는 사금고역할도 마다않는 금융권이 중소기업에는 전당포 찜쪄먹게 박절한 현실이다. "한참 부동산경기가 좋았을 때 많은 사람들이 제게 투자를 권유했고, 사두면 훤히 큰돈이 내다보이는 물건도 많았습니다. 난들 왜 돈욕심이 없겠습니까마는, 사업하는 사람이 샛길로 돈 버는 건 왠지 내키지 않더군요. 요즘처럼 자금난에 시달릴 때에는 한 자락 사두었더라면 퍽 요긴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죠. 그래도, 한 우물만 판 것에 대해 후회는 없습니다." 구두를 오래 닦은 사람들은 고객의 구두 뒤축만 봐도 그 사람의 건강상태를 대략 파악한다고 한다. 오른쪽이 많이 닳아 있으면 어디가, 왼쪽이 표나게 닳아 있으면 또 어디가 좋지 않은지 의사 뺨치게 꿰어찬단다. 한 직종에 오래 종사한 누구라도 저마다 혜안을 터득한다는 의미일 터, 50년 가까이 사업을 해온 오회장에게 작금의 양평경제 현실을 타개책을 묻는다. 무릇 모든 진리가 그렇듯 아주 단순한 답이 이어진다.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 고용인이 되었든 월급 주는 사람이 되었든 같이 일하는 사람끼리 가족의식을 가질 것, 꾸준한 길이 제일 빠른 길임을 믿고 서둘지 말 것. 이 세 가지가 내 좌우명입니다. 세상의 어떤 어려움도 이 세 가지 열쇠로 풀 수 없는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양평이 어렵다 어렵다 하지만, 누굴 탓하기 전에 스스로 나는 과연 제 할 일을 잘 하고 있는 지부터 곰곰이 따져봐야 할겁니다." 사무실을 나서는 데, 자사 제품 한 꾸러미를 싸준다. 선뜻 받기가 겸연쩍다. 내 사는 동네에서 생산된 제품도 제대로 몰랐던 게 참 면구스럽다. '발효촌'뿐 아니라 우리 양평의 기업이나 상점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데에는 주민들의 관심과 애정 만한 밑거름이 없을 것이다. 주민들의 관심과 애정이 저절로 모아지도록, 양평 기업인들과 상인들의 노력과 건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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