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상징체계로서 돌무더기
한민족의 상징체계로서 돌무더기
  • 최일걸
  • 승인 2011.01.30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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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민족의 상징체계로서 돌무더기

 

                        최일걸 작가

 

 

같은 돌이라 해도 어디에 놓여 있는가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진다. 돌은 행인의 발걸음을 잡아채기도 하고, 행인의 발길질에 데굴데굴 구르기도 한다. 돌은 인간의 화풀이 대상이 되어 허공에 던져지기도 한다. 흔히 볼 수 있어 돌멩이들은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지만 보잘 것 없는 돌멩이가 어떤 이에겐 깊은 의미를 지니기도 하고, 조약돌 하나가 사랑하는 이에게 따스한 온기로 전해지기도 한다. 한 사람, 한 사람, 알 수 없는 이들이 하나씩 돌멩이를 포개 차곡차곡 쌓아올린 돌무더기에 이르면 우리는 어쩐지 막막해진다. 수천의 돌멩이가 이룬 돌무더기엔 대체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걸까?

 각자 걸어온 길도 다르고 갈 길도 다르지만, 돌무더기가 있는 길목에선 별 것 아닌 듯 무심코 지나가다가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돌무더기엔 삶의 미학과 진정성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땅바닥에 흩어진 돌멩이를 줍곤 숨을 가다듬은 다음 돌무더기 위에 돌 하나를 포갤 때,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결합하여 혼연일체가 된다. 마음이 깃든 돌멩이 하나 올려놓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이들의 뒤편에서 돌무더기는 언제나 든든한 배경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돌무더기는 정교하지 않다. 허술하고 느슨하다. 그 헐거움이 돌무더기의 매력이다. 그렇지만 돌무더기는 방만하지 않다. 그 길목을 우연히 혹은 필연적으로 지나는 이들이 마음 닿는 대로 쌓아올린 형태이기에 제멋대로 풀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돌무더기는 나름대로 조직적이고 치밀하다. 탑은 저를 지탱하는 뼈대가 손상되면 허물어지지만 돌무더기는 돌 몇 개가 빠져나간다 해도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는다. 여러 사람의 힘이 응집되어 있기 때문일까? 돌무더기는 서로가 서로를 끌어당겨 군집을 이루어 하늘을 지향하면서도 땅을 거역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땅에 단단히 제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는 왜 돌무더기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걸까? 돌무더기엔 이르면 우리는 돌멩이처럼 단단하게 침묵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돌멩이에 내재되어 있는 어떤 신성한 힘이 우리는 붙들고 놔주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돌무더기 위에 한두 개쯤 돌을 올려놓는다. 우리는 돌무더기에 돌멩이를 올려놓으면서 가족의 안녕을 빌고, 죽은 자의 넋을 기리고, 가슴 깊이 꼭꼭 감춰두었던 꿈을 포개 놓는다. 쌓아올리는 것은 하늘을 향한 기원이지만, 돌무더기는 형태 구조상 땅을 근간으로 한다. 즉 돌멩이 하나 올려놓는 것은 하늘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상승을 의미하면서도 그 토대를 확고히 하는 하향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게 여러 사람의 절절한 마음이 군집을 이루고 하나가 되어 돌무더기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돌무더기 앞에서 경건해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과학의 비약적인 발달로 인해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다. 나날이 새로운 것이 늘어나고, 옛것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있다. 돌무더기도 우리 주변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 개인주의의 팽배로 인간관계가 소원해지고, 인간 소외 현상이 극심해진 이 때 우리는 돌무더기를 다시 한 번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돌무더기는 위대한 결속력의 구조물이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경계선 긋고 불가침의 영역을 고수하는 오늘에 와서 돌무더기를 이루어 하나가 되려 했던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되새겨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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