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37】33인민족대표 양평인 박동완선생“기념사업 전무”
【이슈 37】33인민족대표 양평인 박동완선생“기념사업 전무”
  • 양평백운신문편집국
  • 승인 2009.03.20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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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생이 17세 되던 1901년 서울로 이주 수학동에 정착, 양사동 소학교에 입학, 본격 신교육을 받았고 관립고등소학교, 한성중학교를 거쳐 한성외국어학교, 배제학당 대학부에 전입, 비로소 기독교인이 되었다 한다.  따라서 이에 대한 정확한 고증에 착수, 올바른 역사정립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본지 확인 결과 국가보훈처는 기독교계 민족대표로 3ㆍ1운동에 참여했다가 2년간 옥고를 치르고 미주지역에서 민족의식 고취를 위해 평생을 바친 박동완(1885~1941)선생은 양평출생이 맞다고 밝혔다.


1885년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도곡리에서 태어난 선생은 1919년 2월 정동제일교회에서 열린 기독교계 대표자회의에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선정돼 3ㆍ1만세운동에 참가했다.  선생은 3월1일 오후2시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태화관에서 열린 독립선언식에 참석, 독립선언서를 회람하고 만세 삼창을 외친 뒤 일경에 체포돼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2년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1919년 일제심문조서에 따르면 박동완선생 본인이 양평군 양서면 도곡리 출생이라고 증언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양평군 차원의 박동완선생의 공적평가가 뒤따라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현일기자 hi53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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