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용문산 정상(1.157m)바른명칭‘가섭봉(迦葉峰)’ !
양평 용문산 정상(1.157m)바른명칭‘가섭봉(迦葉峰)’ !
  • 양평백운신문편집국
  • 승인 2008.11.21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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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산 정상 산이름 찾기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지난해 11월17일 개방된 용문산 정상(1,157m)은 그동안 공군 제8145부대가 위치, 40여년간 출입이 통제되는 바람에 옛 이름인 ‘가섭봉(迦葉峰)’이라는 지명이 사라질 위기에 빠졌다.


따라서 주민들 사이에선 그동안 ‘공군사이트’, ‘용문산 정상’ 등으로 불리던 용문산 최고봉의 본래 지명인 ‘가섭봉’유래 확인 및 표석 설치를 준비하는 등 지명 확인작업에 나섰다.


용문산은 가평 화학산(1468), 명지산(1253), 포천 국망봉(1167) 이어 경기도에서 네 번째 높은 산으로 산세가 웅장하고 고산다운 풍모로 경기의 상징이 된지 오래전이다.  용문산은 태백산맥에서 갈라진 광주산맥에 속한다.


그러나 해발 1,157m인 용문산 정상 ‘가섭봉(迦葉峰)’은 1966년 공군제 ○○부대 방공관제센터가 터를 잡으면서 주민들 기억에서 이름마저 희미해졌을 정도로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 묶여 40여년간 주민 접근이 허용되지 않고 등산로를 석문쪽으로 우회하고 있다.

 

현재 옥천면 용천리 산 20-3번지 일원과 용문면 연수리 산 67-4번지 경계에 위치한 용문산 정상 ‘가섭봉’에는 산림청 소유 2만6,678㎡에 공중파 방송중계기지국 및 각종 행정관서 무선안테나가 설치되 있을 뿐 아니라, 인근에 국방부 소유의 7만4678m의 군사시설 및 KT 한국통신 중계기지국 8,628㎡ 등 총 11만7224㎡(3만5459평)가 민간인 출입이 제한되고 있다.  최근 등산로 개방에 따라 20㎡(6평)만 일반인이 밟을 수 있다.  아직도 군부대 쪽에는 길이 8m, 폭 2m크기의 가림막이 설치돼 조망을 가리는 아쉬움이 남아있다.

 

용문산 유래

경기도 영산인 용문산은 고산다운 풍모와 기암괴석을 고루 갖추고 있는 산으로 관련된 속담도 회자된다.  “용문산 안개 두르듯”은 ‘옷을 치렁치렁 걸친 모양을 비유한 말’이며, “용문산에 안개 모이듯”은 ‘여기저기서 한 곳으로 집결하는 모양을 이르는 말’이다.  자욱한 안개속에서 용이 승천하는 모습이 연상되는 속담이다.


‘용이 드나드는 산’, ‘용이 머무는 산’, 용문산의 원래 이름은 ‘미지산(彌智山)이라고 전해온다.  ’미지‘는 ’미리(彌里)의 옛 형태고, ‘미리’는 경상, 제주지방의 ‘용’의 방언이고 보면 용과 연관이 있다.  ‘용’의 옛말인 ‘미르’와도 음운이 비슷하다.  즉 미지산이나 용문산이나 뜻에서 별 차이가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미지산’에서 ‘용문산’으로 언제 바뀌어 불렀는지 정확치는 않으나 조선 태조 이성계가 용이 날개를 달고 드나드는 산이라 하여 ‘용문산’이라 칭했다는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실제 1769년 신경준이 쓴 우리나라 산세를 백두대간과 정간, 정맥으로 구분한 <산경표>엔 ‘미지’라는 산명으로 기록돼 있으며, 그보다 200여년 앞선 1530 조선 중종 25년에 이행과 홍언필이 제작한 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미지산은 현 서쪽 20리 되는 곳에 있다’고 기록, 미지산이라는 지명이 살아 있다.


그러나 14세기 조선 중기시인 이적(李赤)의 시 중에 양근 양평 옛 지명을 “왼쪽으로는 용문산에 의지하고”라는 구절이 있는 것을 보면 14세기부터 용문산이란 이름이 미지산과 함께 쓰인게 분명하다.


또한 1710년 조선 숙종 36년 윤두서가 작성한 조선의 지도인 <동국여지도>와 1861년 조선 철종 12년 고산자 김정호가 만든 <대동여지도>에도 ‘용문산’으로 기록된 점을 볼 때 18세기 이후에는 ‘용문산’으로 완전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고려말 문인 이색(李穡)이 지은 <기(記) 지평현 미지산 용문사 대장전기>나 조선초 문인인 권근이 지은 <미지산용문사 시정지국사비명병서>, 조선초 세조때 지어진<용문사기>, 조선초<미지산사나사석종명병서>등의 기록과 그리고 조선초<조선왕조실록>등 고려말에서 조선초까지는 미지산으로 기록돼 있다.

 

가섭봉 유래

용문산 ‘가섭봉’은 예로부터 용문산내 ‘석가봉’, ‘아난봉’ 등과 함께 ‘용문산불교 3봉’으로 일컬어 지고 있으며 ‘가섭’은 부처님에게 염화시중의 미소를 보낸 ‘마하가섭’를 ‘가섭존자’를 칭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용문산은 제1봉 가섭봉(1157m)에 이어 석문(1127m), 제2봉 장군봉(1056m), 제3봉 백운봉(940m), 함왕봉(887m), 도일봉(864m), 중미산(801m) 순으로 준령들이 펼쳐져 있다.  지질은 전체적으로 호상편마암과 편암, 그리고 충적층이 분포돼 있다.


1786년 조선 정조 10년 병오연 전남 무안군에서 태어난 초의선사(숙명 홍중부)는 46세되던 1831년(순조31년) 용문산을 여행하며 남긴 일기에 “수월암(지금의 백운봉밑 세수골)에서 하루를 자고 가섭봉에 올라서 (登迦葉峰) 윤필암과 상원암을 거쳐 용문사에 이르렀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19세기 용문산 정상이 가섭봉으로 통칭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용문면 일부 주민들이 말하는 가섭재(가협치)는 용문산 정상이 아닌 사나사 북동쪽 용문산 중턱 있는 고개로 이 고개를 넘으면 가섭봉을 지나 용문면 연수리로 통한다.   박현일기자 hi53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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