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코박터균 감염 그냥 놔둬도 괜찮나
헬리코박터균 감염 그냥 놔둬도 괜찮나
  • 신문사
  • 승인 2004.05.1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2년 전에 돌아온 김상석(38)씨는 몇 달 전부터 속이 아프고 소화도 잘 되지 않는 증상이 자주 나타나기 시작했다. 동네 의원에서 진료를 받고 처방약을 먹은 뒤 증상이 금방 좋아졌으나 약을 끊으면 다시 그 증상이 나타나 혹시나 위암과 같은 큰 병이 있는 것 아닌가 해서 큰 병원을 찾았다. 김씨는 미국 유학 시절에도 비슷한 증상이 있어 병원을 찾은 적이 있었다. 당시 내시경 및 조직 검사를 받은 결과 위암이나 궤양이란 소견은 없었으나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균에 감염된 결과가 나와 치료를 받기도 했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는 1980년대 초에 발견된 위 점막에 기생하는 세균으로 크기는 대략 2~7㎛ 정도이며, 편모라 불리는 긴 털이 수 가닥 나와 있는 모양이다.세계 인구의 약 절반 정도가 이 균에 감염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구선 위 질환 원인 의심항생제 투여 등 치료 적극국내선 심각한 경우만 처방“식생활습관 교정이 더 중요”헬리코박터 균에 감염된다 하더라도 초기 증상은 거의 아무 것도 없으며 심지어 평생 아무런 증상이 없는 경우도 있다. 다만 일부에서는 급성이나 만성염증, 위 또는 십이지장 궤양을 높인다는 보고가 있다. 위암의 발생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도 의심되고 있다. 김씨를 진료한 미국 의사는 헬리코박터 균에 감염되면 위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고 특히 한국인을 비롯한 동양인의 경우 감염률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미국 등 서구에서는 위 질환의 증상과 함께 헬리코박터 균이 발견되면 항생제 치료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일단 궤양이나 염증 같은 위 질환이나 짜고 맵고 자극적인 음식, 흡연·술과 같은 위암 위험 인자들이 우리나라보다 상대적으로 적어 헬리코박터 균이 위 질환의 큰 원인으로 의심되기 때문이다. 또 우리나라보다 헬리코박터 균에 감염된 사람이 더 적고 항생제 치료 성공 가능성도 높으며 재발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낮다. 김씨는 미국에서의 경험 때문에 병원 쪽에 내시경 및 조직 검사를 요구했고, 그 결과 헬리코박터 균이 다시 검출됐고 가벼운 위염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위암을 의심할 만한 조직 소견은 발견되지 않았다. 김씨를 진료한 의사는 “크게 걱정할 것은 없다”며 안심시킨 뒤 생활 습관에서 주의할 점들을 지적해 짜거나 뜨거워 위 점막에 자극을 주는 음식과 담배·술 등을 피하도록 권하고 위염을 치료하는 제산제 등을 처방 했다. 미국에서와는 달리 헬리코박터 균을 죽이는 항생제 등은 처방하지 않았다. 김씨가 헬리코박터 균을 그대로 ‘방치’하는 이유를 묻자 담당 의사는 “우리나라에서는 조직 검사상 헬리코박터 균이 발견된다고 하더라도 아무 증상이 없거나 단순 위염일 때는 헬리코박터 균을 제거하는 치료는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상우 고려의대 소화기내과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헬리코박터 보균자의 치료 원칙으로 위나 십이지장에 소화성 궤양이 심할 때, 위 점막의 림프종이 발견될 때, 조기위암에 의해 위암 절제 수술을 받았을 때 등에서 2가지 항생제를 합쳐 3가지 약물을 동시에 쓰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연구 결과를 통해 전체 인구의 70% 이상이 헬리코박터 균에 감염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모두 다 증상을 보이거나 위암에 걸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헬리코박터 균이 있다고 무조건 균을 죽이는 치료를 하지는 않는다. 또 세 약제를 동시에 쓸 경우 85% 정도는 헬리코박터 균을 박멸할 수 있으나, 치료한 뒤 1년 안에 높게는 10% 정도에서 다시 감염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2~3년이 지나면 그보다 훨씬 높은 비율의 사람들이 다시 감염될 것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특히 헬리코박터 균에 감염됐지만 궤양이 없고 소화불량 등과 같은 증상만 나타나는 경우 제균 치료를 해도 70% 이상에서 증상의 호전이 관찰되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정현채 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심지어 치료를 해도 별 이득이 없다는 국내외 연구 결과도 있다”며 “특히 최근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에서 이미 위축성 위염이나 상피세포의 변형이 있는 경우 헬리코박터 균을 없애는 치료가 위암 발생을 줄이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헬리코박터 균 전문가들은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아무 증상이 없는데도 단순히 헬리코박터 균을 검출하기 위한 내시경 검사 및 조직 검사는 할 필요가 없으며, 혹시 우연한 기회에 발견되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말고 필요한 경우에만 정해진 원칙대로 치료 받으면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 일반적인 위암 예방 방법으로 “흡연, 불에 심하게 타거나 짠 음식 섭취 등 널리 알려진 위암 발생의 위험 인자들을 줄이는 생활 습관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헬리코박터 균 감염은 나이가 듦에 따라 계속 늘어나며 50대 이후로는 조금씩 줄어드는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헬리코박터 균이 인체에 감염되는 경로나 방법은 아직까지 명확히 밝혀진 바는 없다. 최명규 가톨릭의대 소화기 내과 교수는 “헬리코박터 균은 입을 통해 감염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대변에서 균 항원이 발견되긴 했지만 세균에 오염된 식사 등이 원인으로 생각될 뿐 정확하게 증명된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또 “가벼운 키스 등으로 옮기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예전 할머니들이 어린 아이에게 음식을 씹어서 먹이는 것은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